함영덕의 실크로드 견문록 < 30 >
함영덕의 실크로드 견문록 < 30 >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6.14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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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이어지는 비취빛 계곡물로 세상사에 지친 삶과 영혼 정화하고 동화같은 물의 계곡 지우자이거우
쏭판의 계단식 밭도 바우나의 논두렁처럼 감동과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삶의 흔적들을 보여주고 있다. 새벽길을 달리는 차창가로 작은 마을이 나타났다 사라지고 밭으로 연이어진 고원지대의 전경이 매우 신선하게 다가왔다. 30분쯤 달리면 고산지대가 시작되고 깎아지른 암벽산과 운해가 낀 계곡들이 보인다. 마을 뒷산에 무수한 깃발을 늘어뜨린 장족 마을 어귀에 방목하는 말과 소떼들이 아침을 밝히고 있다. 1시간을 달리자 울창한 계곡의 산림지대가 계속되다가 서서히 고원 아래로 내려가고 있다. 오늘 저녁에 공연할 민속공연 티켓을 예매하기 위해 40분쯤 달려 많은 건물이 들어서 있는 마을에 하차했다. 에메랄드빛 물길이 마을 가로 흐르고 있다.

이 지역에는 호텔들도 많이 밀집되어 있다. 해발 3000m의 고산지대에 흐르는 물이라 얕은 곳은 바닥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맑아서 다른 지역과는 전혀 다른 지형과 경관을 이루고 있다. 오전 9시쯤에 지우자이거우 입구에 도착했다. 매표소 앞에는 긴 행렬의 인파가 몰려 있었다(입장료 140元, 공원 내 차량 이용비 90元). 공원 버스를 타고 맑은 에머랄드빛 계곡물과 소나무 숲, 창끝처럼 쭉쭉 곧게 솟아오른 산림지대, 이름 모를 들꽃들, 연이어 나타나는 비취빛 호수와 계곡의 비경을 감상하며 20여분 정도 셔틀버스를 타고 3400m의 원시의 산림지대에 도착했다.

지우자이거우는 Y자형의 계곡 경관으로 우측 계곡 정상인 원시산림지에서 투어를 시작하여 교차지점인 약일랑 초대소와 좌측 정상인 장해를 거쳐 내려오면서 경관을 감상하는 코스이다.

허공에 빙벽을 두른 듯한 설산과 하늘을 찌를 듯이 늘어선 민싼수 산림지대가 대비를 이루며 빚어내는 환상적인 비경은 지금까지 보아온 전형적인 중국의 경관과는 너무나 판이했다. 히말라야의 원시림 속에 와 있는 기분이다. 마치 신선이 사는 세계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다. 개발위주의 중국관광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신선함과 신비로움을 주는 정취이다. 이곳에서 장해까지 35km에 걸쳐 담배 꽁초하나 없는 청정지역의 경관을 걷노라면 중국인들이 왜 이곳을 최고의 관광지로 손꼽는지 이해할 것 같다.

지우자이거우는 물속에 있는 광물질이 햇빛과 수목에 반사되고 서로 조화를 이루어 칼라풀한 호수의 물빛을 자아내고 있는 계곡이다.

구채구(九寨溝)란 이름은 티베트인이 사는 9개의 장족마을이 있었다는데서 유래되었다 한다. 지우자이거우는 청두에서 북쪽으로 440km 지점에 위치하고 청두와 란저우(蘭州)의 중간지점에 있다.

산림지대를 출발하여 전죽해(箭竹海)에 도착했다. 호수 가에 촘촘하게 자란 넓은 수초밭이 펼쳐지고 물속에 잠긴 오래된 나무들 사이로 작은 고기들이 비취빛 물속을 유영하고 있다. 주변의 푸른 산림과 뒤쪽 암벽 산이 어울려 조성하는 이색적인 분위기는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색다른 경관이다. 호수바닥에 석고 같은 물질들이 죽은 나무에 엉겨붙어 있고 바닥에도 깔려 있어 특이한 바닥지형을 이루고 있다. 화살처럼 가는 대나무 숲이 거울같이 잔잔한 호수에 촘촘히 박혀 있는 호수라 하여 푸른 대나무의 바다(箭竹海)라고 명명한 것 같다.

산호섬 바다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진한 남색 계통의 호수인 웅묘해(熊猫海)에 도착했다. 바다빛깔 보다 더 푸른 호수를 큰 잔에 담아 둔것 같다. 이곳은 팬다곰이 자주 출몰하는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관광객들이 붐비는 때라 팬다곰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팬다곰의 출현 자체만 보더라도 이곳이 얼마나 오염되지 않은 깊은 산림지대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을 비롯하여 중앙아시아를 답사하며 깨닫게 되는 것이 있는데, 바다가 없는 내륙지역에서 큰 호수나 이곳처럼 무언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때 호(湖)보다는 해(海)를 더 즐겨 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호수를 바다로 쓰는 것은 크다는 의미를 강조하는 동시에 바다(海)를 동경하는 마음 때문인 것 같다.

오화해(五花海)에서 내려 작은 개울을 건너 좁은 공작하(孔雀河) 주변 길을 따라 오르니 넓은 호수가 나타났다. 호수 바닥에 깔린 광물질의 영향으로 반은 푸르게 다른 쪽은 보통의 물 빛깔을 띠고 있다. 호수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탁 트인 공간이 나타난다. 앞산 봉우리에 쏟아지는 눈부신 햇살을 받아 주변의 풀밭과 울창한 산림은 신비감을 더해주고 있다.

공작하에서 수목이 빽빽한 산기슭을 돌아 내려오면서 고원을 배경으로 시원스레 쏟아지는 폭포수에 잠시 마음을 담가 본다. 수십 갈래로 흩어져 내리는 시원한 물줄기를 감상하면서 한 여름의 뜨거운 햇살을 적셨다.

일행들과 주차장에 도착하여 경해(鏡海)로 출발했다. 락일랑 폭포 우측으로 들어서면 첫 번째로 보이는 경치로서 길이 1km, 수심 14m로 물이 거울처럼 맑아, 사면이 푸른 숲으로 둘러싸인 호숫가를 걷노라면 신선이 거닐던 선경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

식사를 마치고 장해(長海)에 도착했다. Y자 형의 좌측 계곡 최상단에 위치한 장해는 해발 3102m, 길이 4390m, 평균 넓이 200m, 깊이 80m, 93만㎡에 달하는 이곳 풍경구에서 가장 높고 가장 큰 호수이다. 아득하게 보이는 설산은 가슴 속에 구름을 품고 있다. 짙푸른 물감을 풀어 놓은 것 같은 호수의 물결은 송림가에 고요히 잠들어 있다.

해발 3,000m 이상의 고원에서 바라보는 맑고 푸른 장대한 호수를 바라보노라면 이곳이 중국인들의 마음의 쉼터요 영혼의 고향이라고 느껴지게 된다.

사방으로 흘러내리지 않고 가뭄에도 마르지 않아 옛 사람들은 이를 일컬어 “아무리 채워도 채울 수 없고 흘러도 마르지 않는 ‘보배 조롱박’이라고 했다하니 신선이 사는 곳이 바로 여기가 아니면 그 어디에 있을까. 중국 천지에 흐르는 끝없는 황토물의 탁하고 답답한 물줄기에 대한 갈증을 비로소 이곳에서 풀고 가게 된다.

이 맑고 거울 같은 호수 가에 사노라면 누구를 속이고 무엇을 숨기며 어떤 거짓말을 꾸밀 필요가 있단 말인가.

인간의 몸을 차지하는 70%의 물이 사람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주듯이 황토물이라는 환경이 그들의 차 문화와 음식문화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것 같다. 속내를 알 수 없다는 중국인들의 마음도 실상은 그 깊이와 속을 들여다 볼 수 없는 황토물의 성질과 닮아 있다는 것을 쓰찬성 계곡 굽이굽이를 돌면서 불현듯 스쳐가는 생각이었다.

중국을 탐방하면서 우리 학계나 관광업계가 중국인들을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식 입맛에 맞는 코스를 선택하고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신중히 재고해 보아야 할 시점이다. 어쩌면 수천 년 동안 황토물만 보아야하는 중국인들의 삶과 영혼 속에는 지우자이거우처럼 맑고 투명하여 그 속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깨끗한 물을 보고 마시고 싶은 본능적 갈증이 그들의 DNA 속에 녹아 유전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맑고 투명한 설악산의 계곡물이나 푸른 동해바다, 제주도나 한려수도의 섬 문화들이 중국인들에게는 오히려 색다른 감회를 느끼게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중국관광객 유치의 화두는 한마디로 물(水)이라는 것을 이곳에 와서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된 것이 무엇보다 소중한 경험이 된 것 같다.

장해에서 오채지(五彩池)로 향했다. 낮은 골짜기에 위치한 투명한 구슬같은 작은 연못이다. 엷은 푸른색과 짙은 푸른색, 모래 위의 흰색, 바위 위의 검은색, 물속에 잠겨진 남색 물줄기 등 다섯가지 물빛으로 나타난다하여 붙인 연못 이름이다.

보는 이의 각도나 햇빛에 따라 다양한 얼굴을 가진 2500평의 작은 연못이다. 아름답고 다채로우며 순결하고 투명한 오채지는 비가 오거나 가뭄이 들어도 전혀 수량이 줄거나 불어나지 않는 연못이다.

평온하게 잠자는 호랑이의 호수 노호해(老虎海)에서 100여 미터 쯤 내려오면 10여 미터 절벽 아래로 힘차게 쏟아지며 거품을 내뿜는 폭포들이 발걸음을 상쾌하게 적셔준다. 울퉁불퉁하게 뒤틀린 암벽사이로 힘차게 흐르는 수정폭포(樹正瀑布)는 질풍노도와 같은 격렬한 관현악을 연주하는 것 같아 대자연의 교향곡을 방불케 한다. 수정폭포를 따라 하천을 내려가면 흐르는 물속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나무들의 모습이 매우 특이하다. 물 한 모금 얻기 힘든 중국인들에게 지천으로 흐르는 맑은 물길을 보고 감동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수천미터의 원시산림지대에서 펼쳐지는 아름다운 물의 파노라마다.

호수는 호수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비취 빛 물결들을 감상하며 걷는 이 순간, 세상이 넓음으로 인하여 다양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는 소중한 답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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