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영덕의 실크로드 견문록 < 33 >
함영덕의 실크로드 견문록 < 33 >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6.14 17: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류문명 최초의 교류가 시작된 1만4700km '시작점'
늦게까지 잠을 잤다.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 차를 마시며 모처럼 여유를 찾았다. 처음에는 20시간 이상 기차를 타는 것이 무척 부담스러웠는데 이제는 적응이 되어 잠도 잘 자고 창밖을 스치는 경관을 즐길 수 있어 오히려 편하고 여유를 찾을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중국여행에서 유일하게 접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신(辛)라면은 중국 컵라면 강사부(康師傅)나 이(李)라면 보다 훨씬 입맛에 맞고 값도 비싸다.

톡 쏘는 매운 국물을 마시고 나면 온 몸에 땀이 촉촉이 배었다.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지 컵라면 하나에 이렇게 고마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은 힘든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작은 행복감이다.

어젯밤 청두역에서 산 플라스틱 차(茶)통에다 뜨거운 물을 붓고 차를 음미하니 그동안 누적되었던 여독이 저절로 풀리는 것 같다. 여행은 가장 낮은 몸으로, 가장 겸손한 발걸음으로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열고 자신을 되돌아보는 과정이 아닐까. 배낭을 메고 세상을 순례하는 나그네의 모습,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내 안의 존재를 확인하는 과정이 여행의 진정한 의미인 것 같다.

시후(西湖) 룽징차(龍井茶)를 차 통에 넣고 천천히 그 향을 음미하면서 초코파이를 한입씩 베어 물으니 식욕이 서서히 되살아나고 있다. 초코파이 맛은 우리나라 것과 같다. 중국 여행에서 맥도널드 햄버거와 컵라면, 초코파이는 어느새 기차여행에서 가장 선호하는 음식이 되었다. 또한 차와 차 통을 항상 가지고 다니게 되었으니 중국인처럼 변하는 것 같다.

중국열차의 특징 중에 하나는 드럼통 같은 탱크에 연탄불로 뜨거운 물을 항상 끓여 놓고 있는데 침대칸의 경우는 각 칸마다 설치된 철제보온 물통에 온수를 담아 놓고 있다. 일반석에서는 물통을 가지고 와서 온수를 받아 가면 된다.

이 물은 찻물과 컵라면을 먹을 때나 식수로 요긴하게 이용되고 있다. 찻집도 없는 열차 안에서 하루 이틀을 보내다 보면 차와 차 통을 가지고 다니는 것이 생활의 필수품이 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이제 열 시간 정도의 거리는 멀다는 생각보다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운남과 쓰찬지역 고원에서 쌓인 피로 탓인지 자고 깨는 것을 반복하는 토막잠을 잤다.

오후 3시 반에 시안역에 도착했다. 2층으로 된 버스를 탔다. 남문의 성문을 찾아 우측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조금 걸으면 시안서원청년여사(西安書院靑年旅舍)가 나타난다.

배낭여행객들이 주로 이용하는 유스호스텔이다(1인 40元). 여장을 풀고 시안성을 구경하러 나섰다. 명과 당대의 장안성(長安城)을 기초로 해서 만들어진 600여 년 전의 성벽이 완벽하게 보존된 모습을 보니 매우 부러웠다. 성 둘레는 넓은 호를 파서 물이 흐르게 하였다. 성벽 주변은 공원처럼 잘 꾸며져 있고, 성벽 양쪽으로는 길을 내어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만들었다.

지도에 나타나 있는 한나라 시대의 옛 장안유적지를 답사하고 싶어 버스를 3번이나 갈아타고 현장에 도착해 보니 지도에 표시된 푸른 색깔이 공원으로 조성된 줄 알았는데 몇 채의 주택과 옥수수 밭으로 뒤덮힌 시골농가였다.

시안성의 안은 고층건물들과 번화한 거리가 있어 옛 수도로서의 명성을 유지하고 있으나 성 밖으로 나가면 낙후된 건물들과 시골 농가들이 나타나고 있어 매우 대조를 이루고 있다.

저녁은 포도와 바나나를 사서 먹었다. 이곳은 세계 각국의 배낭여행객들이 머무는 유스호스텔이라 서양음식이 가능하며 10여명 내외의 패키지 여행상품이 있어 함께 참여하기로 했다.

오랜 세월 동안 답사하고 싶었던 고대 실크로드의 첫 발걸음을 시안에서 내 딛게 되어 감회가 새로웠다.

지난 25일 동안 탐방한 중국최고의 관광권을 투어리스트 실크로드(TOURIST SILK ROAD)라고 나름대로 명명하였다.

과거의 실크로드가 비단을 비롯하여 옥, 청동기, 유리, 보석, 종이, 향료, 도자기, 칠기 등의 문물교류와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조로아스터교 등 종교문화의 교류, 그리고 각종 학문과 과학기술 및 예술의 상호교류가 이루어진 동서 문화문물의 교류를 통칭하는 개념이라면 투어리스트 실크로드는 동해를 기점으로 시안까지 중국의 주요 관광권을 잇는 루트를 일차적으로 설정했다.

관광을 통한 인적, 물적, 문화적 교류는 금세기 들어 더욱 그 비중과 중요성이 커지기 때문에 명명한 새로운 개념의 이름이다.

지금부터 가고자 하는 길은 시안을 거쳐 고대 오아시스 실크로드(Old Oasis Silk Road)와 유라시아 초원로(Eurasia Steppe Silk Road)이다. 고대 실크로드는 동서 간 인류문명의 교류가 진행된 통로를 범칭(汎稱)하는 개념이다.

제 2차 세계대전 후 동양학자들은 오아시스로를 통한 동서 교류의 연구를 심화하여 이 길을 중국에서부터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를 지나 이스탄불과 로마까지 연결하는 1만2000km, 직선거리로는 9000km에 달하는 동서간의 문명교류의 통로이자 교역로로 규정하였다.

뿐만 아니라 실크로드의 범위에 유라시아 대륙의 북방초원지대를 지나는 초원로(草原路)와 지중해에서부터 홍해, 아라비아해, 인도양을 지나 중국 남해에 이르는 남해로(南海路)까지 포함시켜 그 개념을 확대하였다.

실크로드란 원래 중국 비단의 유럽 수출로 인해 명명된 조어(造語)였으나 그 개념이 확대된 결과 원 뜻과는 다른 하나의 상징적인 아칭(雅稱)으로 변하였다. 초원로나 해로는 물론이거니와 오아시스로 자체도 사실상 그 길을 따라 비단이 교역품의 주종으로 오간 것은 역사상 짧은 한 때의 일이었을 뿐이며, 그 외의 여러 가지 교역품과 문물이 장기간에 걸쳐 이 3대 통로를 통해 교류되었다.

실크로드란 인류가 예부터 이용해온 원거리 무역로와 문명교류의 통로에 대한 상징적인 명칭인 것이다.

역사적 사실이 말해 주듯 실크로드란 명칭은 비단을 서양에 일방적으로 수출한데에서 유래하였다. 또한 비단이 로마제국의 말엽에 큰 인기를 모았던 진귀품이었음을 기리기 위해 그 명칭이 고수되어 왔다는 점을 감안해 볼 때 실크로드란 명칭은 분명히 유럽중심주의 문명사관에서 비롯된 것이며, 문명교류 차원에서 유래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크로드란 이름이 계속 쓰이는 것은 바로 그 상징성 때문이다.

실크로드란 말의 유래도 100년 전 근대에 와서 출현했는데 이 말을 만든 사람은 독일의 지리학자 리히트 호펜(1833-1905)이다. 그는 1869∼1872년 사이에 중국의 각지를 답사하고 1877년부터 1912년까지 전 5권의 ‘중국(China)’을 저술하였다.

그는 이 책 제 1권의 후반부에 동서 교류사를 개괄하면서 중국에서 중앙아시아를 경유해 씨르다리아(다리아는 강이라는 뜻)강과 아무다리아강 사이에 있는 트란스옥시아나 지역과 서북 인도로 수출된 주요 물품이 비단이었던 사실을 감안하여 이 교역로를 독일어로 ‘자이덴슈트라쎄(Seidenstrabe, 영어 Silk Road)’라고 명명한 것으로부터 기인하였다.

실크로드의 3대 노선인 오아시스로, 초원로, 남해로 중에 오아시스로를 중심으로 여정을 계획하여 보았다. 오아시스로는 실크로드의 여러 간선과 지선 가운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동서 교통로에서 문자 그대로 중추적 역할을 수행해왔다.

오아시스로의 개념은 주로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건조지대(사막)에 점재하는 오아시스를 연결하여 이루어진 동서 교류의 교통로를 지칭한다.

이 길의 서쪽 끝은 로마이고 동쪽 끝은 한반도의 남단이다. 지금까지의 통념으로는 이 길의 동단(東端)은 중국의 장안(長安,현 西安)으로 인정해 왔다. 이럴 경우 그 길이는 1만2000km(약 3만리), 직선거리로는 9000km에 이른다.

그러나 각종 서역문물이 장안과 한반도 남단의 경주를 잇는 육로를 통해 한반도에 전래된 사실을 감안할 때 오아시스로는 분명히 한반도 남단까지 연장된다. 정수일은 실크로드학에서 오아시스의 동단은 장안이 아니라 그 동쪽의 한반도 남단이라고 추단할 수 있으며 총 연장 거리는 약 1만4700km로 약 3만6800리에 이른다고 밝히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