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매몰 현장에서
구제역 매몰 현장에서
  • 충청타임즈
  • 승인 2011.02.15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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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이연복 <제천시청>

전국이 구제역 재앙으로 인해 몸살을 않고 있는 가운데 전국에서 제일 청정지역으로 자부하던 청풍명월의 본향인 제천도 예외 없이 구제역이 발생돼 그동안 예방접종과 방역활동의 노력들이 한순간 물거품이 되는 안타까움을 지켜봐야 했다.

전국 지자체공무원이면 누구나 겪게 되는 이동초소 근무와 예방접종 현장에 투입돼 근무에 참여하고 있다.

이 중 나는 공무원들이 가장 하기 싫은 매몰 처분반에 편성돼 현장에 투입됐다.

내가 맡은 역할은 지난번 돼지 1500마리를 살 처분한 적이 있는 금성면 마을에 소재한 A 농장의 모돈(母豚) 100여 마리를 마지막으로 매몰 처분하는 책임을 맡았다.

현장에 투입되는 인원은 반장인 나를 포함해 시청공무원 3명, 수의사 2명, 군인 7명, 포클레인장비, 텀프 트럭 장비기사 5명 등 총 17명이 투입됐다.

매몰 현장에 투입된 공무원들로부터 매몰당시 장면이 떠오르는 꿈을 꾸고 환청고통에 시달렸다는 하소연들을 들었던 나는 긴장감 속에 현장에 도착했다.

시청버스차량에 탑승해 농장입구에 도착하니 아무리 시골동네라고 하지만 구제역으로 인해 동네사람들이 있는지 없는지 조용했다.

현장에서 만난 농장주는 지난번 살 처분한 경험도 있고 이제 남아 있는 모돈마저 처리해야 하는 안타까움 속에 이미 자포자기한 상태로 우리들을 맞이했다.

우리는 우선 방역복으로 갈아입고 돈사 안으로 들어가 보니 모돈(母豚)이라 그런지 돼지들이 하나같이 크고 살이 찐 돼지들이었다.

한편 돈사와 500미터 떨어진 매몰지에는 이미 장비들이 투입돼 구덩이를 파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현장에 간 나는 그동안 수차 매몰한 경험이 있는 수의사의 지시에 따라 바닥에 비닐을 몇 겹으로 깔고 침출수와 환기작업 등을 완벽하게 마치고 돈사로 다시 돌아왔다.

돈사에 있는 돼지들을 매몰지로 이동시키기 위해 농장주와 군인들은 돈사입구에 대기한 덤프차량으로 돼지몰이를 시작했다.

돼지들은 죽으러 가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리가 가리키는 돈사 바깥 울타리로 나오면서 먹을 것을 달라고 입을 벌리곤 했다.

이어 한쪽 귀퉁이에 몰린 돼지를 옮기기 위해 집게차를 이용, 돼지들을 들어 올릴 때서야 돼지들이 죽는다고 소리를 질러 대고 일부 돼지는 놀라 오줌과 똥을 배설하면서 고통스러워했다.

우리는 안타까운 모습을 뒤로 한 채 덤프차량 1대에 15마리의 돼지들을 싣고 매몰지 현장으로 이동했다.

매몰현장에는 이미 구덩이에 던져진 돼지들이 뒤섞여 아비규환이었다.

장비 2대가 돼지들을 매몰하기 위해 흙덩이들을 퍼붓자 일부 돼지는 다른 돼지들을 짓밟고 일어서 흙더미로 얼굴을 내밀며 울부짖었다.

특히 튀어 나오려는 돼지들을 공중방역수의사가 현장 아래로 내려가 안락사시키는 장면은 눈뜨고 볼 수 없는 참혹스러운 장면이었다.

돼지매몰과 함께 현장 작업을 모두 마친 나는 그날 맡은 바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하지만, 돌아서는 마음 한구석에는 살아 있는 짐승을 생매장시켰다는 자괴감이 들었다.

이런 상황이 되면 누구나 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사명감으로 스스로 위안하지만, 나로서는 잊을 수 없는 힘든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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