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파껍질과 청백당(淸白堂)
양파껍질과 청백당(淸白堂)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10.03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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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윤형철 <한남대학교 생명공학과 2학년>

송(宋)나라 여본중(呂本中)이 쓴 동몽훈(童蒙訓)에 '공직에 임하는 세 가지 법칙은 청렴과 신중과 근면이다. 이것을 알면 그 몸가짐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청렴은 그 뿌리를 양심에 두고 있다. 양심이 병들지 않는 한 청렴은 언제나 건강하다. 조선시대 청백리로 선조 때 서애(西厓) 유성룡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유성룡이 고향에서 우거하고 있다 다시 부름을 받았을 때 친분이 두터운 이준경을 찾아갔다. 이준경이 '벼슬하는 사람은 반드시 서울에 집과 터를 마련해야 편리하네'라고 충고했다. 얼마 후 벼슬에서 물러선 서애는 집이 없어 서울 근교 사찰에서 우거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특히 육척장신으로 키가 컸던 서애는 말년에 삼간두옥(三間斗屋)에서 쪼그리고 살다가 생을 마감했는데, 그의 염을 하는 방 안이 너무 작아서 시신의 발목이 문 밖으로 뻗게 되어 방에서 입관을 할 수 없게 되자 그것을 본 문하생들이 대성통곡을 했다고 한다. 또한 조선시대 재상으로 고불(古佛)이란 칭호를 받은 맹사성과 최윤덕의 청백리 역시 유명하다.

청렴한 재상이었던 맹사성이 고향에 가면서 화려한 말 대신 소를 타고 간 것은 유명한 일화이지만 무장 출신이었던 최 고불의 검소함도 이에 못지 않았던 모양이다. 최 고불이 어머니 상(喪)을 당했을 때 정승 지위에 있으면서도 그 행차는 초라했다. 말 한 필에 종 한 명뿐이었다고 한다. 조선조에 박수량 또한 청백리의 표상이다. 박수량은 공직에 있는 38년 동안 청렴결백한 사람으로 이름났다. 이에 명종이 청렴한 그의 소문을 듣고 몰래 사람을 보내 사는 모습을 알아보도록 했다. 신하가 보고하기를 '벼슬에 오른 지 38년이 되었고 당상 대신에 올랐지만 아직 오두막에 산다'고 했다.

왕이 놀라 향리에 집을 지어주고 '청백당(淸白堂)'이라는 액자를 내려 주었다. 관료사회에 청렴도를 가르는 사불 삼거(四不三拒)라는 불문율이 있다. 부업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일불(一不)이고, 땅을 사지 않는 것이 이불(二不)이며, 집을 늘리지 않는 것이 삼불(三不)이고, 그 고을의 명물을 먹지 않는 것이 사불(四不)이다. 또 윗사람이나 세도가의 부당한 요구를 거절하는 것이 일거(一拒)이고, 청을 들어준 다음 답례를 거절하는 것이 이거(二拒)이며, 재임 중 애경사의 부조를 일절 받지 않는 것이 삼거(三拒)다.

이명박 정부 초기 내각을 이끌 장관 내정자들의 재산형성 과정이 회자된 바 있다.

어느 내정자는 땅을 사랑해서 절대농지를 사들였고, 유방암이 아니라서 오피스텔을 남편으로부터 선물 받고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오피스텔을 샀다는 명언을 남겼다. 그런가 하면 어느 장관 내정자는 2억이나 되는 골프장 회원권을 싸구려 회원권이라고 말해 빈축을 샀다. 또 어떤 장관 내정자는 자식이 한국국적을 포기하고 외국국적을 취득했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의료혜택을 적용받았다.

경제를 살리겠다는 단 한마디로 10년 만에 정권을 차지한 이명박 정부 초대 내각 내정자들의 한심한 청렴도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번 총리내정자들의 양파껍질 의혹은 도를 넘는 것 같다.

김태호 총리 내정자가 청문회에서 거짓말로 낙마한 데 이어 이번에는 청백리의 표상인 감사원장 출신의 김황식 총리내정자도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양파껍질처럼 벗겨도 벗겨도 무엇인가 자꾸 나온다는 이야기다. 마치 고구마 줄기를 뽑으면 고구마가 줄줄이 나오듯 말이다. 이래서 공정한 사회라고 할 수 있겠는가.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하나다.

최 고불이나 서애 유성룡의 풍모는 따라가지 못한다 하더라도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정직한 인물이 각료로 많이 발탁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서도 조선조 명종 때 박수량과 같은 청백당(淸白堂)이란 액자를 국민들로부터 받는 총리나 장관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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