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돌 4·19혁명과 4월의 영령
50돌 4·19혁명과 4월의 영령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04.14 22: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열린광장
정하택 <충주보훈지청 보상과장>

우리나라 헌정사상 최초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불의의 독재정권에 항거한 4·19혁명이 올해로 50주년을 맞는다.

50년 전 이 땅의 청년학도들이 학생들의 정치도구를 단호히 거부하고 1960년 2월 28일 대구에서 "학생들을 정치에 이용하지 말라"며 시작된 구호가 자유당이 저지른 전대미문의 3·15부정선거를 거치면서 이를 규탄하는 학생들의 구호도 "학생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뭉치자" 등 점차 정치적 단결을 외치면서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방향으로 바뀌어 갔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 3·15부정선거 규탄시위에 참가했다가 실종됐던 당시 마산상고생 김주열군의 시신이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마산 앞바다에서 실종 20여 일만에 발견되자 전국의 학생들과 국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그러나 이승만 정권은 진실규명은 외면한 채 무고한 시민들을 연행 고문했고 이에 자유당의 만행을 규탄하는 시위가 전국에서 일어났다.

이렇게 시작된 4월 혁명의 불꽃은 순식간에 시민혁명으로 전개됐으며 '피의 화요일'이라 불리는 1960년 4월 19일, 학생들은 이른 아침부터 선언문을 낭독하고 거리로 뛰쳐나왔다.

국회의사당에 모인 학생 시위대열은 경무대 방향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부정선거 규탄과 학원의 자유를 요구했던 시위가 경찰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혁명의 대열로 바뀌어 8·15광복과 6·25전쟁을 거쳐 분단된 조국에 가슴아파하던 국민들은 그도 모자라 반민주주의, 권위주의적 정권의 독재에 숨죽여야 하는 질곡의 삶을 단호히 거부하고 민주주의 초석을 다지는 혁명의 대열에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참여하게 됐다.

5000년 유사이래 이 땅의 진정한 주인은 바로 국민들 자신임을 확인한 위대한 민주주의 혁명이자 민초들의 승리였다.

자유와 민주, 그리고 정의의 횃불이 올랐던 4월은 우리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준 달이기도 하다.

또 4월은 이 나라에 군주정치를 종식하고 최초의 민주공화정부인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던 고귀한 달이다.

50년이 지난 지금 당시의 주역들은 이제 이순의 나이를 넘어 국가를 경영하는 위치에서 저마다 제2의 4월 혁명을 외치고 있다. 모두가 50년 전의 초심으로 돌아가 진정 무엇이 국가와 국민을 위한 길인지 돌아보고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아집을 버려야 하겠다.

'4월 혁명정신'이 우리고장에서 갖는 의미는 제천 등지에서 봉기한 의병운동, 충북 전 지역 장터에서 일어난 3·1독립만세운동에 이어 충북의 학생들의 4·19혁명 참여는 충북도민의 숭고한 민주희생정신의 맥으로서뿐만 아니라 이 땅의 민주 역사의 상징으로서 충북의 역사적 위상을 말해주고 있다.

다시 부활한 4월 정신은 우리 시민들 곁에서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남아 충북의 발전, 나아가 선진한국으로 도약을 위한 국민들의 역량을 결집하는 원동력으로서뿐만 아니라 진정한 애국애족이 무엇인지 방향성과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전함으로써 역동적으로 한국의 미래를 바꿀 수 있도록 교훈으로 삼아야 하겠다.

우리에게는 내부의 갈등으로 에너지를 낭비할 여유가 없다. 북한 김정일의 핵무기 개발과 6자회담 미복귀, 일본은 아직도 영토야욕을 버리지 못하고 독도주변을 맴돌고 있다. 우리 모두 다시 한 번 50년 전의 초심으로 돌아가 안팎으로 몰려오는 국가적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자.

4월 영령들 앞에 머리 숙여 다시 한 번 다짐하자. 4월 영령들이여, 임들이 이 땅에 내리신 4·19혁명 정신을 기리고 계승해 성숙된 민주주의 토대 위에 평화와 번영의 선진 일류국가 건설은 바로 우리들의 몫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