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분 지난 후 눈물 흘렸다
16분 지난 후 눈물 흘렸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6.29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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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겸의 안심세상 웰빙치안
김중겸<전 충남지방경찰청장>
   친구들의 장난이라 여겼다. 육군사병으로 복무할 때였다. 아버님이 위독하시다는 느닷없는 관보(官報)에 그리 생각했다. 제대 말년에 서울바람이나 쐬라는 공작으로 치부했다.

월남전이 한창이었다. 대학생활도 시들해졌다. 젊은시절 겪는 자아탐구의 홍역. 그로 인한 방황이었다. 전쟁터를 누비면 생존의 이미를 알듯 느껴졌다. 막연한 기대감이었다.

일찌감치 보충역으로 돌려 논 어른의 노력을 무산시키기로 했다. 면사무소 호병계(戶兵係) 할아버지뻘 계장에게 통사정. 모름지기 사내는 장래를 위해 군대 가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집안에는 비밀로 하기로 묵계. 논산훈련소 가서야 안도했다. 웬걸 시력이 나빠 퇴소조치에 직면. 군의관에게 우국충정을 설파했다. 새 군대안경도 받아 쓴 후 드디어 훈련에 들어갔다.

그렇게 시작한 군 생활이었다. 참전은 월남에 다녀온 참모가 말렸다. 목숨은 하나라며 대신 사회에 나가 좋은 일 하라 했다. 지원하면 번번히 빼냈다. 그런 실랑이로 두 해를 보냈다.

제대를 한 6개월 앞두고 그 전보가 날아들었다. 무시했다. 빗발치는 전화. 진짜라 했다. 휴가를 내서 서울로 갔다. 뇌졸중으로 쓰러지신 어른 곁을 내내 지켰다.

가망 없다는 의사의 말. 집으로 모셔가라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희망 없어도 병원에서 치료받으시게 하고 싶었다. 한 달을 혼수상태로 병원에서 지내시다가 운명. 추석 전날이었다.

16개월을 식물인간으로 지낸 할머니. 존엄사 판결로 인공호흡기를 뗐다. 허 허 참. 정확히 16분 후 눈물을 흘렸다. 시간이 흘렀다. 얼굴에 혈색이 돌았다. 평온한 모습이었다.

며칠을 이리 지내실까. 누가 알랴. 고통 없되 품위 있는 죽음. 사람이 만들어 낸다는 게 과연 가능할까. 생명은 조상의 선물이다. 보이지 않지만 마음속에는 살아있는 신의 작품이다.

자손이나 의사라는 사람의 손으로 끊어도 될까. 사람인 법관이 죽을 죄 지은 사람에게 사형을 언도하는 제도마저도 죄악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나는 안다. 친척이 너희들 먹고 살려면 퇴원뿐이라 했다. 순간 아버지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눈을 뜨고 계셨다. 아 들으셨구나. 안락한 죽음이란 끝까지 모시는 거라는 걸 깨달았다. 죽임이 없는 세상이 안심세상임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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