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귀 귀로 들어보면…
당나귀 귀로 들어보면…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6.24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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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교의 세상만사
김익교 <전 언론인>
   신라48대 경문왕의 귀가 당나귀 귀였다고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다. 왕의 귀가 당나귀 귀인 줄은 궁녀는 물론 왕비까지도 몰랐다고 한다. 세상 오직 한 사람 이 비밀을 알고 있는 자는 왕의 두건을 만드는 전속 두건장이뿐이다. 이 비밀을 발설하지 못해 입이 근질거려 마음고생이 심했던 두건장이는 죽을 때가 되어서야 도림사의 대나무숲에 대고 '임금님귀는 길다(吾君耳長)'고 평생의 한(恨)을 풀듯 속시원히 털어 놓았다. 그후 대나무 숲에서는 바람이 불 때마다 '임금님귀는 당나귀 귀'라는 속삭임 같은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경문왕은 화랑이었던 18세 때 당시 임금이던 헌안왕이 세상을 두루 살피고 온 화랑들에게 견문을 듣기 위해 베푼 잔치에서 왕의 눈에 띄어 맏사위가 되고, 세자가 없던 헌안왕을 계승해 왕위에 오른 인물이다.

임금이 베푼 견문청취의 자리에서 그의 탁월한 민정파악이 후일 왕위까지 오르게 한 것이다. 그의 재위 15년간은 황룡사 9층탑이 건설되고 내외적으로 많은 치적을 쌓은 통일신라의 문화적 난숙기였다.

경문왕의 귀가 정말 당나귀 귀처럼 실제 길죽하게 생겼는지는 신화로 전해지는 설일 뿐 입증할 수가 없다. 다만 김응겸이라는 이름을 가진 화랑이 왕위에 오른 과정과 그의 치적을 보면 왜 그의 귀를 당나귀 귀라 했는지 짐작이 갈뿐이다.

항상 민심을 파악하기 위해 귀를 기울였고 백성들의 소리를 귀담아 들었기 때문에 후대에 정확한 민심을 반영한 정치를 펼쳐 치적을 남긴 그의 귀를 당나귀에 비유했을 것이다.

독선과 아집이 판을 치고 절대다수 국민들의 지지를 받는 양 착각을 하는 위정자들의 아전인수(我田引水)적인 당파싸움이 갈수록 심해지는 난세다.

위로는 대통령에서부터 국회의원 등 소왈 국민을 위해 일한다는 위정자들은 지금 국민들이 진정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기나 하면서 자기들의 주장이 '절대다수 국민들의 뜻이고 지지를 받는다'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

착각은 자유라지만 이건 증세가 심해 환각의 지경이다. 국민들의 선택으로 대통령이 되고 국회의원이 돼 국민의 혈세로 세비를 받는 자신들의 처세가 옳고 그름을 알고 있는지 묻고 싶다. 국민들에게 세금을 축내는 존재로 인식이 돼 가는 자신들의 처지를 안다면 이 지경까지는 안 갈 것이다.

묵묵히 참고 있는 착한 국민들 앞세워 입방아들만 찧지 말고 당나귀 귀로 미복미행(微服微行 : 변장하여 신분을 감추고 돌아다님)이라도 해보면 덧칠이 안된 순수한 민심을 알 수가 있을 것이다. 삼국유사에 쓸 게 없어 경문왕의 귀를 당나귀 귀라고 했겠는가.

임금들뿐 아니라 황희, 맹사성, 허조 등 역사에 치세의 족적을 남긴 명재상들은 미복미행을 많이 했다.

정치판에 '정면돌파'니 '결사항전'이니 하면서 전운이 감돈다니 세계적인 수치(羞恥)다. 부끄러운 줄 아는 것도 인간의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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