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配慮)
배려(配慮)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4.23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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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교육 칼럼
최종돌 <전교조 충북지부 대의원>

주장이 배려를 만나면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생긴다며 연일 공익광고가 흘러나온 적이 있었다. 그러할 것이다. 주장하는 자가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할 줄을 안다면 그 주장은 꺾이거나 완화가 될 것이기에 완화되거나 꺾인 주장으로 다가가면 상대도 마음을 움직여 화해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좋은 말이다. 싸우는 모습보다는 화합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늘 있는 훈화이기도 한 말이다.

그런데 상호 이해관계가 달라 한발씩 양보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경우라면 모르겠지만, 우리 사회의 갈등 양상은 아직도 그렇지 않은 것들이 많다. 일방적이고 권위적이며 특정인의 이익이 되는 주장, 그것도 양보를 해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더 차지하려는 주장이 많다는 것이다.

그런 주장은 전혀 '배려'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양보를 할 만큼 한 사람들에게 더 양보(배려)를 하라고 하는 것 같아 공익광고 문구를 씁쓸하게 만든다. 특히, 시위대 중 한 명이 전경에게 꽃을 건네는 모습을 배려의 장면으로 보이게 하는 것은 너무나 일방적이며 정치적이었다.

배려라는 말뜻을 '상대를 생각한다'는 단순 의미로만 사용해서는 안 된다.

단지 갈등이 있기에 서로 배려하라는 말은 안 된다는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중·고등학생들은 양보할 만큼 했다. 작년에 촛불 장난으로 나라님 간담을 서늘하게 한 죄()로 0교시 부활을 넘어 새벽 등교도 마다않고 하고 있으며, 교복마다 명찰을 박음질해 놨어도 꾹 참고 있다. 소풍을 없애도, 점심시간 저녁시간을 줄여도, 보충을 늘려 7교시 8교시가 생겨도, 우열반에, 열외없이 강제 야자를 시켜도, 야자시간이 10시를 넘어 11시 12시가 돼도, 일제고사에 모의고사에 장학지도시험()에 중간고사에 찌들어도, CCTV로 복도마다 감시를 해도, 핸드폰을 압수·몰수해도 아이들은 그저 '배려()'만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 학교 정책에 교사들도 배려에 배려를 거듭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교육청에선 '장학지도'라는 옛 권위적인 말을 되살려 학교별 '장악시도()'를 하려는데 교육적 잣대는 아예 차치하고 '배려'란 없다. 더 해야 한단다. 참으로 무자비하신 선생님들이시다.

배려란 좀 더 가진 자가 좀 덜 가진 자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다. 대가없이 베푸는 것이다. 한 살이라도 더 먹은 이가, 한 푼이라도 더 버는 이가, 더 배운 이가, 더 높은 위치에 있는 이가 먼저 배려해야 할 것이다. 그 말도 배려하여! 어른인 우리가 아이들에게 무엇을 배려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찾아 베풀어야 할 것이다. 학급회의 학생회의 한 번 제대로 해 보지 못하고 졸업을 할 이 아이들에게, 매 시간 꾸벅꾸벅 졸고 있는 이 아이들에게, 일탈로 순간을 모면하고자 무언의 발악을 하는 아이들에게, 매번 치는 시험에 매번 똑같은 점수와 성적으로 멍해 있는 이 아이들에게, 독재시절 내 과거와도 너무나 같은 이 아이들에게 무엇을 배려할 것인가를 찾아야 할 것이다.

더욱이 그런 일방적이면서 비교육적인 주장에 문제를 제기하고 반대를 하는 이의 목소리에 '양비론'이란 잣대를 들이대면서 '배려'를 말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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