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보다 아름다웠던 어머님
봄꽃보다 아름다웠던 어머님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4.22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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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천
이규정 <소설가>

올해도 어느덧 4월의 하순으로 접어들었다. 이제는 어디서나 활짝 핀 봄꽃들이 날 보라는 듯이 살랑거린다. 어느 사이에 제법이나 자란 풀잎과 나뭇잎들의 산들거리는 몸점?이 정겹게 느껴지는 봄이다. 하늘조차 맑아서는 따듯한 햇살이 부르는 봄의 유혹에서 몰려나오는 사람들의 옷차림들이 또한 꽃잎처럼 가벼워졌다.

우리의 어머님은 봄꽃들이 유혹하는 4월에 태어나셨다. 음력으로 3월의 하순에 봄꽃들이 활짝 피어서야 태어나신 것이다. 봄꽃들이 활짝 피어서야 태어나셨기 때문인지, 어머니가 젊어서는 정말로 봄꽃처럼 아름다웠다. 하지만 빈농에서 우리들을 키우려는 고생에서 깊어지는 주름살이 접혀들기 시작했다.

우주공간에 무엇이든 거부하지 못하는 것이 세월이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들 또한 예외는 아니다. 우리어머님 또한 누구도 속이지도 못하는 나이에 팔순을 훌쩍 넘기셨다. 형님내외분이 함께 모시고 살면서 봉양하지만, 이제는 한 껍질의 살가죽이 겨우 달라붙은 얼굴마저도 검버섯이 덕지덕지 달라붙었다. 거기에 앙상한 뼈마디조차 고목나무의 삭정이처럼 푸석거리고, 가끔이나마 정신까지 놓아서는 구급차로 모셔가는 병원에서야 요행히도 깨성해지셨다.

어머니가 가끔은 정신까지 놓아서도 걱정하며 기다리는 것은 자식들뿐이다. 내가 어쩌다가 쫓아가서는 현관문을 들어서기도 전에 겅중겅중 뛰어나오신다. 이번에도 생신 전날에서야 쫓아갔더니 화들짝 반기는 어머니가 뛰쳐나왔다. 나또한 반기면서 번쩍 안아들었더니, 한줌의 검불보다 가볍게 느껴지는 몸에서 시큼해지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어머니는 우리가 얼마나 반가웠는지, 한참이나 마주보고 앉아서도 생글거리는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내가 생신전날에서야 찾아오는 자식들이 뭐가 그렇게 좋으냐고 여쭈었더니, 얼굴을 바라보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고 기운이 솟는다고 하셨다. 그 대답을 하시면서도 생글거리는 웃음에는 아무런 욕심이 없다. 우리가 이제는 언제 어떻게 돌아가실지 모르는 것을 걱정하듯이, 어머님 또한 그 걱정에서 자식들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보았다는 것에 만족하시는 웃음이었다.

나는 한동안이나 어머님의 그 웃음을 머쓱하게 쳐다보면서, 예전에 봄꽃보다 아름다웠던 어머님의 모습들을 떠올렸다. 지금은 비록 깊어지는 주름살이 접혀드는 얼굴조차 검버섯이 달라붙었지만, 아직도 자식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봄꽃보다 아름답고 정겹다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거기에 나는 어머니를 얼마나 사랑하며 살았을까 내 자신을 되돌아보는 반성에서 눈시울이 뜨거워졌지만, 그것도 한순간이 지나서는 동생들과 키득거리는 이야기에서 어머니는 뒷전이다.

어머님과 하룻밤을 보내고 돌아오는 길목에도 활짝 핀 봄꽃들이 날 보라는 듯이 살랑거렸다. 맑은 하늘에 또한 풋풋한 풀 냄새가 스며드는 봄의 유혹에서 어머니를 잊었다. 저녁을 먹고서야 생각나는 어머님의 모습에서 안타까운 한숨이 쏟아진다. 해마다 어머님의 생신을 다녀와서야 불효막심한 자책조차 작심삼일에, 지금에서도 똑같이 반복하는 작심삼일의 자책에서 그것도 버릇이 되고 말았다. 봄꽃보다 아름다웠던 어머님의 자식사랑은 아직도 변함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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