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스트적 삶의 비애
소피스트적 삶의 비애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4.08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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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으로 읽는 세상이야기
김 귀 룡 <충북대학교 인문대학 철학과 교수>

고대 그리스에서 소피스트는 일반적으로는 지혜로운 사람을 일컫고, 보다 특수하게는 기원전 4~5세기경 아테네에서 말과 지식을 판매하여 부와 명성을 누린 사람들을 가리킨다. 후자가 후에 궤변론자로 알려진 사람들로서 이들은 부와 명성을 누리기는 하지만 사람들에게 많은 비난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요즈음 성공한 사람들과 비슷한 면이 많다.

소피스트들의 삶의 방식은 독특하다. 이 사람들은 아테네 사회의 이방인들이다. 곧 남의 동네에서 사는 사람들이다. 남의 동네에서 살면서도 이 사람들은 상당히 떳떳하고 자유분방하다. 비싼 수업료를 받으면서도 제자들을 골라서 받는다. 말 잘하는 법, 말로 싸워서 이기는 법들을 가르쳐 제자들을 출세하게 만들어주니 제자가 넘쳐 날 수밖에 없다. 출세지상주의가 윤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는 명분이 덜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인기가 있기는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하기는 잘 먹고 잘살게 해주겠다는데 누가 그걸 마다하겠는가. 이 정도라면 소피스트들을 대놓고 욕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사실상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소피스트들은 민주주의자라고 할 수 있으며, 소피스트들을 못마땅한 사람으로 만들고자 했던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은 오히려 전제주의자들이라는 비난을 받을 만한 소지가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세상 사람들 각자가 생각하는 바가 나름대로 일리가 있으며 그 각각을 진리라고 부를 만하다고 주장한다. 곧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무조건 무시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점에서 소통의 통로가 열려 있는 사람들이다.

여기까지 생각해보면 소피스트들을 욕하는게 이상할 정도이다.

그런데 소피스트들은 말싸움을 하면 지지 않는다. 소피스트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지지 않으려 하며 그에 맞춰 적합한 논리를 구사한다. 모든 싸움에서 이기는 방법은 상황에 따라 변하는 논리를 구사하면 된다. 곧 상황에 따라서 입장도 바꾸고 말도 바꾸면서 상대방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면 이기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상대방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방법도 다양하다.

감언이설로 설득하기, 침묵으로 상대를 답답하게 만들기, 말을 많이 해서 상대로 하여금 말할 기회를 주지 않기, 이성에 호소하기보다는 감정을 자극하여 화나게 만들기, 폭력적으로 억압하여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기 등이 이들이 사용하는 방법이다.

소피스트들은 또한 상대가 흑이라고 하면 백의 입장에서 흑을 논박하고, 백이라고 하면 흑의 입장에서 백을 논박하는 능력을 구비하고 있다. 이는 상대가 죄인임을 입증하던 검사가 변호사가 되어 동일한 사람의 무죄를 입증하고, 철새 정치인이 야당 시절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다가 여당에 입당하면 정부의 시책을 무조건 옹호하는 능력을 구비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고대 아테네의 소피스트들처럼 잘 먹고 잘살고 있다. 세상에서 영화를 누리기 위해서는 소피스트들의 이런 기술은 필요악이라고 할 만하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사람들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데 있다. 부귀와 공명을 누리기 위해 힘 있는 자들의 편에 서서 수시로 말을 바꾸는 사람들의 능력이 대단해 보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은 것이 상식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다.

사람들의 이런 마음을 반영하듯 소피스트들은 2500년 동안 두고두고 욕을 먹고 있다. 이는 현세의 권력과 영화를 누리기 위해 영혼을 버린 자들에게 내려지는 역사의 준엄한 심판이다. 현세의 잠깐 동안의 영화를 위해 인류 역사 내내 욕을 먹어야만 하는 것이 소피스트처럼 사는 인간들의 비애라고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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