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누구의 편도 아니다
신은 누구의 편도 아니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3.25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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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으로 읽는 세상이야기
김 귀 룡 <충북대학교 인문대학 철학과 교수>

예기(禮記) 예운(禮運) 편에 보면 천하위공(天下爲公)이라는 말이 나온다. 천하의 이치는 사사롭지 않고 공정하다는 말이다. 천하의 이치에 맞게 세상을 경영하는 사람은 사람을 쓸 때에도 자기와 사사롭게 친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라 현명하기 때문에 쓴다. 이런 사람은 자기의 어버이와만 친하게 지내지 않고 자기 자식만을 사랑하지 않는다.

모두를 내 어버이처럼 공경하고 내 자식처럼 사랑하니 이런 사람이 다스리는 세상은 믿음이 돈독하고 모두가 화목하게 지낼 수 있게 된다.사사로움이 판치는 혼탁한 요즘 세상에서는 꿈같은 이야기이다.

광야에서 40일 방황하는 동안 예수는 막바지에 사탄으로부터 세 가지 유혹을 받는다. 한 가지 유혹을 뿌리친 예수에게 사탄은 두 번째로 "네가 신의 아들이라면 성전(교회)에서 뛰어내려 봐라, 신이 너를 사랑한다면 너는 손끝 하나 다치지 않을 게 아니냐"라고 유혹한다. 이에 대해 예수는 "신을 시험하지 말라!"고 응대한다. 다시 말해 예수는 뛰어내리지 않았다. 성서에 보면 예수는 기적을 많이 행한다. 물을 포도주로 바꾸기도 하고, 두 마리 생선으로 몇 백, 몇 천의 사람들을 먹이기도 하고, 물 위를 걷기도 한다.

이런 사람에게 까짓 건물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는 일이 뭔 대수이겠는가. 그런데 예수는 뛰어내리지 않는다. 별로 어려운 일 같지도 않은데 예수는 이적 행하기를 거부한다. 왜 거부했을까.

예수가 한 답변을 보면 성전에서 뛰어내리는 일은 신을 시험하는 일이다. 그는 성전에서 뛰어내려 무사하다는 걸 보임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신의 아들임을 알리는 걸 신을 시험하는 일로 생각하고 있다.

성경을 보면 예수는 신의 아들인 게 분명한데 왜 그것이 신을 시험하는 일일까. 예수가 보기에 신이 특별히 자신을 사랑한다는 걸 보이는 일은 신을 시험하는 일이다. 곧 신이 자신에게 사사로운 정을 표하기를 바라는 건 신의 공정성에 위배되는 일을 부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가 이를 요구하면서 성전에서 뛰어내렸다면 신은 예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예수가 신의 아들이 되는 건 이와 같은 테스트를 다 거쳤기 때문이다. 예수가 특별히 신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테스트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던 건 아니다. 그러면 예수가 이적을 행할 수 있었던 것은 신의 아들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런 테스트를 이겨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신의 아들 사랑은 굉장히 엄격하다. 아들이라고 특별히 봐주는 게 없다. 사자가 자기 새끼를 절벽에서 굴러 떨어뜨리는 것처럼 자신의 아들이 될 만한 사람들에게 더 혹독한 시련을 가한다. 누구든지 자신을 버리고 다가오면 다 자기 아들이라고 생각하는게 신의 사랑인 것 같다. 신이 자기 편이기 때문에 이 세상 삶에서 보다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다는 발상은 신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다. 신은 누구의 편도 아니다. 신은 신이 자기 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자기의 사사로움을 버리면 신이 자기 편이 되는 것이다.

신이 자기 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은 예로부터 혼란스럽고 시끄러웠다. 사사로움을 버리고 천하의 이치에 맞춰 공정한 사람이 다스리는 세상은 모든 사람이 안온하고 평안하다. 노인은 그 생을 편안히 마칠 수 있고, 젊은이는 적재적소에서 일하며, 아이들은 믿고 의지하며 자랄 곳이 있으며 곤궁하고 아픈 사람은 부양을 받고, 여인은 돌아갈 곳이 있다.

요즘 청년들은 일하고 싶지만 일할 곳이 없고 어떤 여인은 세파에 찌들리다 갈 곳을 찾지 못해 죽음의 길을 택하고, 높으신 분들은 지금도 피 터지게 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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