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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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3.18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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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천
강대헌 <교사>

꽃 피는 춘삼월 봄이 왔건만, 내게는 고뿔이란 특별한 봄 손님이 찾아 왔다.

밤새 몸을 뒤척거렸다. 그래도 고통은 줄지 않았다. 도저히 입을 다물 수도 없었다. 입을 쩍 벌리고 있는 내 모양이 괜히 신경이 쓰여 굳게 입술을 모아 보기도 했지만, 분화구처럼 뜨거운 김을 내뿜어대는 입은 다시 또 벌려져 있었다. 혀가 바짝바짝 타올랐다. 그렇게 자리를 보전하고 이틀을 꼬박 누워있다 보니 앓는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아이고~.

그냥 어떻게든 버텨 보려고 마음을 먹었지만, 호전되는 기미(幾微)는 보이지 않고 도리어 주인 잘못 만난 몸만 고생시키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 구급방(救急方)처럼 믿는 이비인후과를 찾아가 진료를 받았다. '주사 한 방 맞으시죠'라는 의사의 단호한 조치는 사복음서(四福音書)와도 같은 안도감을 먼저 주었다. 앞서 진료를 받은 환자는 주사를 두 방 맞으라는 말을 듣고 엄청 놀랐었는데, 그나마 나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주사는 제법 셌다. 내가 맞아본 대부분의 엉덩이 주사는 간호사가 두드려주는 손바닥 마찰의 최면에 걸려 통증을 느낄 수 없었는데, 이번의 경우는 달라도 아주 달랐다. 손바닥으로 쳐주는 것이 오히려 주사액이 잘 들어가라고 독촉마저 당하는 느낌이 들어 순간적으로 잔뜩 불편한 심정이 되기도 했다. 꼭 이런 방식으로 치료를 받아야만 되는가 하는 회의감(懷疑感)마저 밀려와 뒷간에 갈 적 마음 다르고 올 적 마음 다르다는 말은 더 이상 남의 말이 될 수 없었다.

주사도 맞고 처방전(處方箋)대로 받은 약까지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든 그날,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가 문득 어떤 음성(音聲)을 떠올렸다. 그것은 바로 아담이 신의 명령을 어긴 채 선악과(善惡果)를 먹고 숲속에 숨어 있다가 들은 음성이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그 음성은 결코 질책이 아니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에 대한 회한(悔恨)을 닦달하는 것도 아니었다. 신은 언제나 인간의 현재 위치를 묻는다. 비록 잘못을 했더라도 숨어 있거나 도망가지 말고 당신 앞에 있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에 내겐 그 음성이 '네가 아프구나, 내가 지금 너를 보고 있다'라는 더할 수 없는 위로처럼 여겨졌다.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김종해의 시 '그대 앞에 봄이 있다'가 몸 안의 메마른 갈증에 흘러든 시원한 생수처럼 내 몸 구석구석을 휘돌며 지나갔다.

'우리 살아가는 일 속에/파도 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이/어디 한두 번이랴/그런 날은 조용히 닻을 내리고/오늘 일을 잠시라도/낮은 곳에 묻어 두어야 한다./우리 사랑하는 일 또한 그 같아서/파도 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은/높은 파도를 타지 않고/낮게 낮게 밀물져야 한다./사랑하는 이여/상처받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추운 겨울 다 지내고/꽃 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 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고 했다. 고뿔에 들 때가 있고, 나을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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