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허기진 상호 의존성
여전히 허기진 상호 의존성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3.18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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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칼럼
이상종 <청주시청 사회복지과>

"세상은 모든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기는 충분하지만 모든 사람들의 욕심을 채우기는 충분하지 않다."

마하트마 간디의 말이다. 와크텔(Wachtel)에 따르면 성장 지향적인 사회에서 사는 사람들의 '충분'은 항상 지평선 위에 놓여 있는 것 같아서 점점 다가갈수록 더욱 멀어져 버린다. 우리는 얼마나 갖고 있든 간에 더 많이 갖고 싶어 하는 욕구는 끝없이 지속된다. 국제적 조정가와 평화 운동가로 활동 중인 히즈키아스 아세파의 저서 (평화와 화해의 새로운 패러다임) 본문 중 일부다.

히즈키아스 아세파는 경쟁적 정치·경제·사회 구조 속에서는 수요와 충분에 의해 생산이 되는 것이 아니라 공급과 생산이 수요자의 불만족을 자극하고 구매심리를 조장한다는 것이다. 구매력이 없는 사회구성원이 불특정 다수를 향해 극단적인 폭력성을 나타내는 것은 동경의 대상만 되고 이루어지지 않는 과소비에 대한 자멸감과 상실감이 그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점심 커피타임 중 한 직원이 "사람은 들을 수 있을 만큼만 들리고 볼 수 있을 만큼만 본다. 만약에 미세한 소리까지 다 들리고, 안 봐도 될 것까지 전부 다 보이면 아마도 미칠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기에 딱 알맞은 기능을 주었다"고 말한다.

비단 사람뿐만 아니라 정치·경제·사회구조에서도 지당한 이치다. 감당할 수 없을 심한 왜곡은 또한 심한 굴절을 만들어 결국 시끄럽기만 한 엇박자 괴성이 되어 귀청의 진동을 불안하게 하고 전달되어야 할 소리를 듣지 못하게 한다. 의사불소통의 사회가 되는 것이다.

경제가 어려워져서 대형 범죄가 증가하고 인심이 더 박해지며 세상살이가 어려운 것일까. 경제적 생산성과 효율성은 사회를 지탱하는 절대가치라기보다는 살아가는 데 있어서 수단일 것이다. 어려울 때는 한 톨의 쌀도 귀하고 도움을 받는 것은 더 더욱 감사한 일이다. 그럼에도 감사와 함께 충만한 기쁨이 있어야 비로소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어려운 시기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어려움보다는 절망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치유하기 힘든, 골이 깊어지는 사회로 가고 있는 것이다. 더 큰 경제적 값을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

히즈키아스 아세파는 "의존적인 유년기와 독립성이 강한 청소년기를 지나서 성숙한 인격으로서 상호의존성의 성인이 된다"고 한다. 어려운 시기에 우리 사회가 성숙한 상호의존성의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상생의 가치와 함께 최소한의 충분함도 갖지 못하는 사회구성원들을 위한 이해와 배려가 더 더욱 필요한 이유다. "이 세상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있다네. 하지만 모든 것들은 그것에 대한 값을 치러야 하지" 존 하리차란의 (행복한 멈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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