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 유감
용산참사 유감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1.21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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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이재경 부국장

새해 벽두부터 이게 무슨 일인가. 용산 재개발 상가 참사로 온 나라가 아우성이다. 철거민 등 농성 중인 사람 5명이 죽고, 진압에 나선 경찰까지 희생됐다. 온 국민을 망연자실하게 만든 이번 참사는 경찰의 무리한 진압이 원인이라는 게 중론이다.

한승수 국무총리가 긴급히 정부 입장을 발표하며 유감을 표명했지만, 동영상과 신문지상을 통해 드러나는 참사의 실체는 경찰의 과잉 진압이 주된 원인이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선 체감온도가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겨울 새벽의 추운 날, 찬물을 고압의 호스로 퍼붓는 '물대포'가 등장했다. 살에 닿기만 해도 얼음이 낄 찬물을 사람에게, 그것도 맞으면 웬만한 힘없는 사람이면 퍽퍽 나가떨어질 고압의 물대포를 쏴댔다. 물대포는 보호장구조차 갖추지 않은 철거민들에게는 총탄같이 무서운 무기였다.

경찰이 과거와 달리 협상의 시간을 갖지 않고 속전속결의 의지로 조기 진압에 나선 점도 의아스러운 부분이다. 통상 경찰은 이런 유형의 농성이 벌어질 때 협상 전문가를 내세워 최소 수십여일의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 왔다. 그러나 이번 사고에 앞서 경찰은 농성 발발 후 불과 25시간 만에 전격적으로 진압에 나섰다.

대테러 작전용인 경찰특공대가 동원된 것도 무리수라는 지적이다. 경찰청이 기자회견에서 "전문가들이어서 고도로 훈련되어 있고 어떤 위험이 있더라도 지혜롭게 대처할 것으로 믿었다"고 이유를 밝혔지만, 결과는 최악의 참사로 끝났다. 심지어 특공대원까지 목숨을 잃었음에야. 특공대원들이 컨테이너에 실린 채 기중기에 들려 옥상 위 허공을 위태롭게 오가는 모습도 이게 우리나라 경찰의 한계인가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위압적인) 접근에 흥분한 농성자들이 화염병을 던져 화재를 자초했다'는 경찰의 해명이 이를 잘 증명하고 있다.

진압에 앞서 안전을 확보하지 않은 것도 문제다. 옥상에서의 투신 등 만약의 안전사고에도 대비하지 않았다. 건물 주변에 추락 시 사상을 방지할 수 있는 보호매트조차 제대로 깔려 있지 않았다. 땅바닥에 몇 개 갖다놓은 스티로폼이 고작이었다. 실제 농성자 중 1명이 옥상에서 4층 아래 바닥으로 떨어져 중상을 입었으며 경찰은 이마저도 10여분간 방치했다.

경찰 내부에서도 과잉진압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어제 보도된 한 진압 전문 경찰관의 얘기를 들어보면 진압에 나선 경찰특공대는 작전의 기본 절차도 무시했다. 폭력적이고 위험한 도구가 등장하는 용산 농성 같은 경우의 진압 작전은 1차 협상단계에 이어, 2차로 폭력 도구의 소진단계, 마지막으로 지칠 때를 기다린 뒤의 막후 협상 등의 절차를 거쳐서 풀어나가는 것이 정답이란 것이다.

정부의 사후 대응도 국민을 분노하게 하고 있다. 사건 발생 당일 한승수 총리의 발표는 물론이고 대통령마저 대국민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한 총리의 발표문도 자세히 뜯어보면 어처구니가 없다. '진상 규명을 통해 불법 행위를 조사, 법에 따라 엄벌한다'고 밝혔는데, 그 말의 뉘앙스가 불법시위를 한 철거민들을 겨냥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쇠고기 파동 때 큰 교훈을 얻었을 것으로 믿었던 우리 정부가 이젠 국민을 죽이는 정부로 낙인 찍히는 커다란 우를 범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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