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겁한 사회
비겁한 사회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1.19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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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권혁두 부국장

1902년 12월22일 뼛속까지 얼리는 칼바람이 사정없이 몰아치는 인천 제물포항. 일본 상선 겐카이마루(玄海丸)호가 닻을 올렸다. 배에는 미국 하와이로 떠나는 조선인 121명이 타고 있었다. 공식적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이민이었다. 일본 고베(神戶)에서 갤릭(Gaelic)호로 갈아탄 이민자들은 다음해 1월13일 하와이에 도착했다. 고베와 호놀룰루항 선상에서 치러진 신체검사에서 35명이 탈락해 귀국하고 86명만 상륙허가를 받았다.

'평등의 나라 미국 하와이의 날씨는 덥지도 춥지도 않아 사람이 살기에 적당하다. 수업료를 내지않아도 학교에서 영어를 배울 수 있다. 월급은 15달러, 조선돈으로 67원이다. 일요일에는 쉬며 하루 10시간 일한다. 주택비와 연료비, 수도세, 병원비는 모두 고용주가 지불한다.' 미국인이 경영하는 이민알선회사가 내건 이 광고문안에 끌려 신분상승을 꾀하려던 노동자와 농민들이 절반을 차지했다.

그러나 이들을 기다린 것은 문화생활이 보장된 안락한 직장이 아니라 살인적인 중노동과 극심한 인종차별이었다. 노예처럼 작업복 가슴에 번호판을 달고 감독의 채찍을 맞아 가면서 고된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초창기 이민자들이 무엇보다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백인 농장주 부부가 자신들이 보는 앞에서 거침없는 사랑행위를 벌이는 것이었다고 한다. 조선인을 집에서 기르는 개 정도로 인식했던 백인들의 인종적 편견에 그들이 얼마나 극심한 모멸감을 느꼈을지 상상이 간다. 1905년 황성신문에 해외 이민자들의 비참한 생활상이 폭로된 후 이민이 전면 중단됐지만, 이때까지 하와이로 송출된 이민인력은 7226명에 달했다.

최근 부부간에도 강간죄가 성립된다는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판례를 뒤집은 이 진보적 판결은 즉각 사회적 논란을 촉발시켰지만, 판결을 이끌어낸 주인공이 한국인과 결혼해 이민온 외국인 여성이라는 사실은 희석됐다. 남편은 생리중인 그녀를 가스총과 흉기로 위협하며 성행위를 강요했다고 한다. 친지는커녕 말이 통하는 사람 하나없는 이역만리 타국에서 그녀가 밤마다 겪었을 악몽을 생각하면 분노보다 한국인으로서 수치심이 앞선다.

이주여성과 외국인 노동자들, 심지어는 동포인 조선족 교포들이 한국사회에서 학대받고 무시당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모든 외국인들이 푸대접을 받는 것은 아니다. 동남아 빈국 출신들이 인종차별의 주요 희생자들이다. 못사는 나라라고 깔보고 막 대하는 속물 근성의 발로로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불법체류를 약점으로 잡고 임금 떼먹기는 다반사요, 욕설과 주먹질이 예사라고 하니 우리 조상들이 하와이나 멕시코에서 겪었던 고초보다 덜하다고도 할 수 없다. 하와이에서 1세기 전 조상들이 겪었던 인종적 설움이 21세기 한국에서 고스란히 재연되는 셈이다. 희생자였던 조상들과 달리 후손들이 가해자로 변했을 뿐이다.

걱정스러운 것은 우리가 약자를 배려하지 않는 비겁한 나라로 점점 더 다가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방, 지방에서도 비영남, 서울에서는 강북, 대기업에 들지 못하는 중소기업, 정책적으로 버림받은 농어민 등 요즘 시끌벅적하게 펼쳐지는 '주류의 잔치'에서 밀려난 계층을 보노라면 약자를 핍박하는 비겁한 세태가 고쳐지지 않는 이유를 알 만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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