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만제로' 연말특집
'불만제로' 연말특집
  • 이재경 기자
  • 승인 2008.12.29 22: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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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이 재 경 부국장 <천안>

TV마다 연말 특집이 한창이다. 방송사마다 연예방송대상 시상식을 하고 올해 인기를 끌었던 프로그램들은 종합 선물세트처럼 1년치로 포장해 시청자들을 TV 앞에 끌어다 놓는다. 일단 재미가 있어서 그런지 시청률도 꽤 높다.

개중 지난주 방영된 비오락 프로그램인 MBC '불만 제로'의 연말 특집이 눈에 띈다. (이 프로그램은 개그맨 황현희의 패러디로 더 유명해진 KBS 이형돈의 소비자고발과 궤를 같이한다.)

방송에서 소개되는 장면들은 충격적이다. 재활용 누룽지, 구더기 간장 게장, 식용접착제를 붙여 판 가짜 갈비, 학교 매점의 쓰레기 햄버거, 썩은 사과를 포장 배달한 인터넷 과일 판매업체 등. 심지어 택시의 '따당치기(할증요금 버튼을 손님 몰래 두 번 눌러 정상요금보다 30% 정도 더 바가지 씌우는 수법)', 동대문 상가에서 순진한 소비자에게 육두문자까지 써가면서 물건을 강매하는 장면도 방영됐다.

유통기한이 지난 빵을 날짜만 바꿔 다시 파는 프랜차이즈 제과점은 그래도 꽤 양호한 편이다. 손님이 먹다가 남긴 밥을 빨아 누룽지로 재활용해 밥상에 내고, 고깃집에서 손님상에서 빼내온 된장찌개를 모아 다시 물을 부어 휘저어 끓여 손님상에 또 내어가는 장면은 기가 막힐 따름이다.

"재활용을 하니 좋은 거 아니냐"라며 반문하는 식당 업주의 말엔 말문이 막힌다. 놀라운 것은 아직도 많은 식당이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지른다는 것이다.

식당에서 쌈장과 김치는 절대 함부로 먹을 일이 아니다. 한다 하는 웬만한 식당이 대부분 손님의 쌈장과 반찬들을 재활용한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카메라를 들이밀고 PD가 취재한 문제의 업소들 중 상당수가 수개월 후에도 같은 짓을 저지르고 있었다는 점이다.

학교 매점에서 파는 저질 햄버거는 같은 장소에서 여전히 날개돋친 듯 팔리고 있었고 아직도 식당에선 쌈장이나 김치의 재활용이 예사로 이뤄지고 있다. 당국의 무책임한 대응은 아직도 우리에게 후진국 사회를 못 벗어나고 있다는 자괴감마저 들게 하고 있다.

그래도 방송은 일단 후련하다. 심층, 잠입 취재를 통해 우리 사회의 모순을 지적하고 경종을 울려준 제작진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성과도 보통이 아니다. 불만 제로가 찾아갔던 문제 업소들의 대다수가 잘못된 점을 시인하고 개선했다. 방송은 해안 한 포구 식당 상가의 마술 저울(횟감 1kg을 달면 2kg으로 두 배나 늘어나는)을 모조리 고쳐줬고, 주유기를 조작해 용량을 속여 파는 주유소를 문 닫게 했다. 끼워팔기 관행으로 소비자들을 울렸던 뷔페 업체에 대한 보도는 공정거래위가 새로운 법규를 만들어 환불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화재 위험이 큰 온열기에 대한 문제점을 보도해 해당 기업체가 전량 무상으로 리콜하게 해주는 성과도 거뒀다.

문제는 행정이다. TV에서 백날을 떠들어도 꿈쩍거리지 않는 우리 행정 시스템은 대불공단의 전봇대처럼 대통령이 호통을 쳐야 가동된다.

대통령의 어린 자녀가 저질 햄버거를 먹고 배탈이 났대도 그럴까.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의 집에 구더기 간장 게장이 배달됐다 해도 그랬을까. 국민을 찾아가지 않는 행정, 아직 우리 사회의 한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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