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범행
묻지마범행
  • 문종극 기자
  • 승인 2008.12.08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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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문 종 극 편집부국장

초등학교 시절 우리반에서 힘이 센 아이가 교실 통로를 지나던 급우 중 한 명을 때리는 것을 목격했다. 맞은 급우가 "왜 때리냐"고 하자 "그냥 때리고 싶어서 때렸다 왜 꼽냐"며 오히려 큰소리를 쳤다. 내가 보기에도 때릴 이유가 뚜렷하게 없는 것 같은데 때린 것으로 기억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일종의 묻지마폭행이다. 경찰용어로는 무동기폭행인 것이다.

소위 묻지마범행 즉, 무동기범행이 최근 들어 부쩍 늘고 있다. 지난 10월 서울 강남의 고시원 흉기 난동 살인사건, 7월 동해시청 민원실 흉기 살해사건을 비롯한 크고작은 묻지마범행이 꼬리를 물고 있다. 지난 4일 청주지법이 특별한 이유없이 친척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김모씨에 대해 징역 12년을 선고한 사건도 묻지마범행에 해당한다. 범행의 동기나 이유가 없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정확한 통계자료는 없지만 사회가 복잡다단해지고 경제가 매우 어려워지는 시기에 이같은 묻지마범행이 속출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묻지마범행의 원인에 대한 주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 진다. 그 하나가 의학적인 주장이다. 과대망상피해증후군, 반사회적 성격장애 등의 정신질환을 원인으로 꼽는 것이다. 특히 정신병의 일종으로 반사회적 인격장애 중 하나인 사이코패시(Psychopathy) 증상을 앓고 있는 사람 즉, 사이코패스(Psychopath)가 문제라는 주장이 많다. 사이코패스는 19세기 프랑스 정신과 의사 필리프 피넬이 그 증상에 대해 최초로 저술한 후 독일의 심리학자 슈나이더가 개념을 정리했으며, 캐나다의 심리학자 로버트 헤어가 사이코패시 판정도구(PCL-R)를 개발하면서 일반에 널리 알려진 것이다.

사이코패스들은 일반적인 정신질환 증세와는 달리 통상의 감정이나 자각능력에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죄의식을 느끼는 데에 익숙지 못한데다 충동적이고 책임감이 결여되어 있으며, 폭력적인 성향이 강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 때문에 소외감, 열등감, 사회적 불만 등으로 인해 감정이 폭발하면 묻지마 행동을 하기 쉽다는 것이다.

묻지마범행의 원인으로 꼽고 있는 또하나의 주장은 질환적인 측면보다는 우리사회의 모든 사람들에게 잠재해 있어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심리적인 작용이라는 주장이다. 소외·열등·불만감이 극도로 팽배해지면 누구나 그럴 수 있다는 것으로 무한경쟁시대에 경제 불황까지 겹쳐지는 등의 불안정한 사회가 만들어낸 부작용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물론 전자와 같은 정신질환적인 원인도 있겠지만 후자의 불안정한 사회의 부작용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왜냐하면 여러가지 자극요소로 인해 개인적인 심리적 불안상태에 빠져 폭발할 수 있는 질환적인 범행은 상시적일 가능성이 높은 데 비해 최근과 같은 사회적 불안 특히, 경제불황이 심화되는 시기에 발생이 집중된다는 것에 비춰보면 그렇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불황의 늪에서 가장 고통받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안전망 구축이 시급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회적·경제적 약자인 이들이 곧 자본주의 사회의 소외계층으로 밀리면서 상대적인 피해의식과 박탈감에 빠져 한풀이를 하게 되면 묻지마범행으로 이어질 수 있어 안전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경기침체가 더욱 심화되고 있는 요즘 약자 배려정책이 요구되며, 정부 차원의 정책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최근 어청수 경찰청장도 "무동기 범죄가 증가하고 있다"면서 "이는 사회적 소외자에 대한 배려가 없기 때문"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차제에 관심과 배려가 초점이 되는 특단의 대책이 마련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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