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고 싶어 일을 찾고 일에 묻혀 산 삶
일하고 싶어 일을 찾고 일에 묻혀 산 삶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11.28 06: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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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 초대석 정종택 충청대학장
행정·정치·학계 전방위 이력 눈길
충북지사시절 이권 성금기탁 유도
청주공항 유치로 되레 총선 낙선


글 한덕현·사진 유현덕기자


한때는 '계룡산 정도령' 대접도사실 이것이 정 학장의 본 모습이다. 누구보다도 많이 움직이고 누구보다도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리고 누구보다도 일욕심이 많다.

놀랍게도 정 학장의 사회생활은 초라하게 시작됐다. 광혜원 중고 임시교사가 첫 직업이다. 그러다가 촉탁직원으로 내무부에 들어가 관계와 인연을 맺게 되는데, 그의 신화는 이때부터 본격 꿈틀거렸다. 말 그대로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이다. 일에 파묻혀 살면서 젊음을 불사르다보니 과실은 예상 외로 빨리 찾아 왔다. 출발은 임시직이지만 18년만에 충북도지사에 올랐고 3년 뒤엔 장관에까지 발탁된다. 공직의 바닥에서 출발해 단시일에 정점까지 오른 이 기록은 지금도 안 깨지고 있다.

그의 이력을 얼핏 들여다 보자. 광혜원 중고 교사(1956), 내무부 토목국 촉탁직원(1958), 대통령 정무 및 새마을담당 비서관(1971), 내무부 기획관리실장(1974), 충청북도지사(1976), 노동청장(1980), 농수산부장관(1980), 정무1장관(1981), 제11, 12, 13대 국회의원(1981∼1992), 환경부장관(1995), 충청대학장(1997). 이런 과정을 거치며 정 학장은 어찌보면 한 자연인에게 부여될 수 있는 최고의 삶을 걸었는지도 모른다.

워낙 일을 많이 벌이고 또 그 일에 매달렸던 탓에 그에겐 숱한 야사(野史)가 따라 다닌다. 그중 몇몇은 지금까지도 지역의 알만한 사람들 사이에서 자주 회자된다.

우선 촉탁직원의 성공신화를 유감없이 보여주던 충북도지사 시절, 그는 임기 후반쯤에 이상한 음해에 휩싸였다. 무슨 부정한 돈을 챙겼다는 것이다. 의혹은 결국 위에까지 보고돼 당시 부장검사 책임의 계엄사 특별조사를 받게 된다. 이때만 해도 신군부의 서슬퍼런 살기가 횡행하던 시절이어서 도청의 분위기는 말 그대로 초상집이었다.

하지만 정 학장의 지난 3년동안 도정을 샅샅이 뒤진 조사팀의 전리품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오점 하나 없는 깨끗한 도정을 만천하에 알리는 계기가 됐고, 이는 곧바로 당시 최규하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돼 '인간 정종택'의 진가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줬다. 곧바로 노동청장에 전격 발탁되더니 다시 5개월만에 농수산부장관으로 영전하는 생에 최고의 순간을 누린다.

나중에 밝혀진 것이지만 그는 충북지사 재직시 모든 이권에 대해선 성금 기탁으로 유도, 35억원의 기금을 조성해 이 중 15억원은 도민을 위한 체육시설 및 시민회관 건립 비용으로, 나머지 20억원은 충북지역개발회에 위탁했다.

재일동포 갑부인 정동필씨와도 돈 인연이 있다. 도지사 시절 정동필씨가 알아서 쓰라며 5000만원을 건넸지만 정 학장은 이 돈을 예술문화회관을 짓는데 사용했다. 나중에 이를 알게 된 정동필씨는 서운하게 생각하면서도 삼성 이병철 회장에게 귀띔하게 됐고, 이 때부터 정 학장은 수차례 삼성으로부터 계열사 사장 자리(당시 동방생명)를 제의받지만 모두 사양했다.

이 밖에도 청주종합운동장과 야구장 설립 때 현대건설 사장이던 이명박 대통령과의 인연을 비롯 공군사관학교와 한국교원대학교 유치, 김수녕 양궁장 건립, 청주공항 유치 등 지역의 굵직굵직한 현안이 있을 때마다 그가 만들어 낸 '사연'은 언제 들어도 스릴과 재미가 있다.

특히 충북 글로벌화의 상징인 청주공항은 두고 두고 정 학장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12대 국회의원 시절 온 힘을 다해 공항을 유치했지만 엉뚱한 부메랑이 덮친 것이다. 소음에 대한 지역민들의 우려가 확산되면서 14대 총선에선 낙선의 결정적 단초가 됐다. 선거전 내내 상대 후보들이 "기존의 전투비행장 소음도 못배기는 판에 공항까지 유치했다"며 연합으로 매도했기 때문이다. 정 학장은 당시에 대해 "다 지난 일이지만 그때 청주공항 유치는 소음공해가 몇배나 더 큰 전투비행장 이전을 전제로 한 것인데, 이는 철저히 무시되고 시종일관 소음문제만 여론화됐다. 그 땐 군사정부 시절이라 공군 비행장 이전을 입에 올릴 수 없었고 결국 꿀먹은 벙어리처럼 냉가슴만 앓았다"고 회고했다.

돈 사연은 또 있다. 지난 1997년 지금의 충청대학장으로 부임하게 되자 평소 친분이 있는 모 단체가 환경부장관 전별금으로 5000만원을 건네려다가 정 학장의 극구 사양으로 무산된다. 이 일을 계기로 그 단체는 후에 대학발전기금 2억원과 도서기금 5000만원을 학교측에 기부할 수 밖에 없었다.

같은 시기에 LG그룹 구본무 회장도 전별금으로 일정액을 전달하려 했지만 역시 뜻을 이루지 못했고, 결국 LG측은 이것이 원죄()가 돼 나중에 50억 상당의 반도체 교육장비(하이닉스 합병분 포함)를 충청대학에 기부하게 된다.

청주박물관 건립에도 남다른 사연을 가지고 있다. 도지사로서 당시 김성진 문광부 장관에게 국립박물관을 하나 지어줄 것을 간청했는데 "부지 3만평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답변만 들었다. 하여 며칠을 고민하다가 지금 박물관이 들어선 땅 주인인 곽응종 옹을 찾아가 담판을 벌인다. 대답은 흔쾌하게 돌아왔다. 문제의 땅을 희사받게 된 것이다. 그런데 곽옹이 그만한 땅을 기부한 이유가 기막히다. 풍수지리에 능하다는 사람이 지침을 줬다는 것인데 요즘도 대선 때만 되면 출몰하는 '정도령' 신드롬, 즉 정 학장이 계룡산 정도령일지도 모르니 인연을 맺으라는 조언에 선뜻 결단을 내렸다고 한다.

몸에 밴 이타(利他)의 삶

취임후 768억 유치성과

최근 정 학장은 언론에 상당한 부담감을 가졌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몇년전 한동안 지역을 떠들썩하게 했던 모종의 문제와 관련해 본의 아니게 여론에 휩쓸리게 된 것이다. 그것도 특정 세력에 의해 심각한 인신공격으로 변질되면서 마음 고생이 심했다. 그중에서도 자신이 평생 금과옥조로 삼아 온 이타(利他)의 삶이 거꾸로 이기(利己)의 그것으로 매도될 땐 큰 충격마저 받았다.

사실 일 좋아하는 정 학장은 주변에 대한 마음 씀씀이가 남다르다. 가는 곳마다 조직이건 사람이건 많은 도움을 줬다. 본인은 손사래를 치지만 충청대만 해도 그렇다. 충청대는 정 학장 취임 이후 지금까지 교과부로부터 315억여원을 지원받았고, 기타 정부부처에서도 453억원이라는 막대한 돈을 끌어와 학교를 키웠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는 학교 구성원 전체의 시스템이 가동됐지만 결정적인 성사엔 거의 정 학장의 인맥이 작용했다. 그는 지금도 전화만 잡으면 정·관·재계 사람들을 앉아서 줄줄이 불러낸다.

정 학장의 이런 내공 때문에 지역의 뜻있는 사람들은 "그가 꼭 한번 민선지사를 했었어야 하는데…"라는 아쉬움을 토로한다.

이를 입증하듯 충청대는 정 학장 취임 이후 괄목할 만한 성장을 기록했다. 2001년엔 이 학교 학위식에 4년제 포함 전국지방대학 최초로 현직 대통령(김대중)을 참석시켜 그 저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데 이어 2005년부턴 연속 4년동안 전국 취업률 1위를 달성함으로써 학교의 위상을 확실히 다져놨다.

이젠 임기를 얼마 안 남긴 상황이라 정 학장은 또다시 새로운 인생을 설계해야 한다. 이를 묻자 대답은 역시 본인의 체질()을 벗어나지 못했다.

"초야에 묻히더라도 고향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언제든지 하겠다."

'인간 정종택'은 이런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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