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든 꽃다발 속 어머니
거꾸로 든 꽃다발 속 어머니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10.03 22: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고
엄 지 연 <영동 부용초 교사>

지난 늦여름 청주시에 소재한 대학교의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대학원 입학하고 어느새 2년 반이 지났구나 싶은 감회에 젖어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대학 교정에 들어섰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신 선배님으로부터 예쁘고 풍성한 꽃다발을 받았다. 그리고 졸업식장 안에서 대학원 같은 과 동기인 전 선배님의 부인에게서 노란 꽃다발을 뒤늦게 온 여동생에게서 하얀 꽃다발을 받았다.

이렇게 한 번에 안지도 못할 만큼의 꽃다발을 받으니 문득 20년 전 중학교 졸업식 때 내가 받은 첫 꽃다발이 생각났다. 우리 엄마는 가난한 살림에 4남매를 끌어안고 키우시느라 바빠 장녀가 다니는 국민학교 6년, 중학교 3년 동안 치맛바람은커녕 정말 너무하다 싶게 한 번도 오시지 않았다.

그런데 중학교를 졸업한다니까 어머니는 학교에 들르셨다. 산간 지방에 위치한 내 고향 칼바람 부는 2월 햇살만 눈부신 어느날 어머니는 학교에 오셨고 말없이 꽃다발을 내밀며 중학교 졸업을 축하해 주셨다. 요즘엔 꽃집이 흔하고 저장 기술, 재배 기술이 좋아 겨울에도 다양한 꽃을 볼 수 있지만 그 시절 졸업 시즌의 꽃은 국화가 제일 흔했고 색이 진한 꽃은 소량에 그나마 엄청 비싸게 팔았다.

학교에 잘 오시지도 않던 엄마가 동생을 데리고 학교에 온 것도 괜스레 쑥스럽고 막 16살에 들어선 소녀의 섬세한 감수성에는 턱없이 부족한 멋스럽지 않은 꽃다발이 참 부담스러웠다. 내 생애 첨 받은 꽃다발은 빈약한 국화 2∼3 송이를 투명 비닐에 둘둘 만 멋없는 것이고 심지어 초라해 보이기까지 했다.

난 엄마가 갖고 온 꽃다발을 친구들의 풍성하고 색이 진한 꽃다발과 연방 곁눈질로 비교해 보면서 버릴 수도 없고 껴안을 수도 없고 어쩌나 갈등이 생겼다. 이 갈등으로 기념사진 찍자는 말에 그만 순간적으로 꽃다발을 거꾸로 들고 찍게 되었다. 졸업식 후 현상된 사진을 보니 거꾸로 든 꽃다발을 들고 애매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지금 교단에 서서 제자들에게 부모님께 효도하라 가르치지만 정작 나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후회스럽기 그지없다. 멋이 있고 없고가 뭐 그리 큰 문제라고 엄마가 정성껏 사준 꽃다발을 거꾸로 들고 찍었나 두고두고 후회되었다. 그것보다 더 초라하고 더 투박해 보이는 꽃다발이라도 좋으니 7년 전 돌아가신 엄마를 잠깐이라도 다시 만나고 싶다.

사회인이 되고나서 더 친해진 내 동생이 대학원 졸업을 축하해 줘서 고맙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운전을 해줘서 무사히 대학원을 졸업하게 팍팍 밀어준 전선배님, 정작 나는 아무런 준비도 안 했는데 깜짝 선물로 근사한 꽃다발을 준 신선배님의 고마움이 하늘에 닿는다.

엄숙한 대학원 졸업식이 끝나고 와글와글 졸업사진을 찍을때 내려다본 예쁜 내 꽃다발. 그리고 거꾸로 든 꽃다발 속의 어머니. 죄송하고 그리고 보고 싶다.

철없던 시절 어머니 생각에 눈물이 나려고해 일부러 더 활짝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교학과에 예복과 사각모를 반납하고 필요한 서류를 받고 하다보니 꽃다발들이 너무 거추장스러워 바깥 소파에 잠시 내려놨다. 바쁜 시간이 지나고 급히 꽃을 찾으러 소파에 가보니 이런. 세개의 꽃다발 중 두 개는 없어지고 한개만 남았다.

아차 뉴스를 보니 졸업 시즌 악덕 상흔으로 꽃다발을 재활용한다더니 그것인가. 이미 한번 써 먹어서 시들시들할 텐데 왜 가져갔을까. 장난기 가득한 20대 청춘들이 선배 졸업한다고 가벼운 주머니에 생색은 내고 싶어서 가져갔을까. 아무렴 어떤가. 졸업식 꽃다발 속 그리운 어머니는 이미 내 마음에 고이 계시지 않는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