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身)으로 살기
몸(身)으로 살기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10.02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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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으로 읽는 세상이야기
김 귀 룡 <충북대학교 인문대학 철학과 교수>

노자 도덕경에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몸을 천하처럼 귀하게 여긴다면 그에게는 천하를 맡길 만하고(故貴爲身於爲天下 若可以託天下矣), 몸을 천하처럼 사랑한다면 능히 그에게 천하를 맡길 만하다(愛以身爲天下 若可以寄天下矣). 언뜻 이상하게 들린다. 천하의 일을 도모하려면 몸을 아끼지 말고 전력투구를 해도 모자랄 판에 몸을 귀히 여기고 사랑해야 천하를 맡을 만한 자격이 있다고 하니 말이다.

조용히 곱씹어보면 몸의 가치를 높게 생각해야 한다는 가르침은 나름의 맛이 있다. 몸은 스스로에게 필요한 것 이상을 요구하지 않는다. 몸은 배고프면 허기를 가시게 할 정도의 음식을 원하고 목마르면 갈증을 해소할 정도의 마실 것을 요구할 뿐이다. 배고프다고 해서 지나치게 많은 음식을 먹으면 몸은 괴로워하고, 아무리 목이 마르다 해도 몸은 한없이 물을 마셔대지 않는다. 배가 차면 진수성찬도 쳐다보기 싫어지는 법이다.

몸은 결핍도 싫어하지만 마찬가지로 지나침도 싫어한다. 필수적인 영양소가 부족하면 저항을 하고 마찬가지로 아무리 좋은 영양소라도 필요 이상을 쌓으면 성인병과 같은 문제를 일으키며 저항을 한다. 우리의 몸은 만족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서 과욕은 문제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 필요 이상으로 쌓는 부, 과도한 권력욕 등 때문에 온갖 부조화가 발생한다. 한 쪽이 넘치면 다른 한 쪽은 모자란 것이 세상사이다. 과도하게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결핍을 감내하면서 살아야 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자기 몸을 관리하는 것처럼 부족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게 세상을 관리하는 사람에게 천하를 맡기는 건 있을 법한 일이다.

몸은 자기에게 필요한 바를 정확히 안다. 갈증이 날 때 음식을 주거나 배고플 때 물을 주면 몸은 반기지 않는다. 몸은 배고프면 밥, 목마르면 물, 성욕이 일면 이성(異性)을 원한다. 사자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풀을 먹지 않는다고 한다. 몸은 불가사리처럼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먹어대지 않는다. 몸처럼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정확하게 알면 인생의 군더더기를 많이 줄일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맞지 않는 직위, 스스로에게 어울리지 않는 부, 명예 등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몸은 우리에게 그렇게 무모하게 살지 말라고 경고한다. 몸이 그런 것처럼 스스로에게 맞는 것을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는 일을 일부러 행하지는 않는다. 몸에 따라 사는 사람은 자신에게 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원하지 않는 바를 강요하지 않는다. 곧 배고픈 사람에게 음식을 주고 목마른 사람에게 물을 줄 뿐 자기가 배고프다고 해서 목마른 이에게 음식을 주거나 자기가 목이 마르다고 해서 배고픈 이에게 물만을 주지 않는다. 사람들의 욕구를 잘 살펴서 원하는 바를 제공하는 것이 세상을 경영하는 일의 요체라고 할 때 몸을 귀히 여기고 사랑해 그에 따라 사는 사람에게 천하를 맡기는 건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이런 사람이 정치를 한다면 세상이 지금처럼 혼란스럽고 각박하지 않게 될 것이다.

인간의 생각은 몸과 달리 자기에게 알맞은 것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분수에 넘치게 월권하는 편이다. 생각은 자기와 다른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며 대체로 남도 나와 같으려니 한다.

그러나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상대는 그르게 생각하는 경우도 많고 나에게 필요한 것이 상대에게는 독이 되는 경우도 종종 있는 법이다. 이런 경우 자기의 생각을 상대에게 강요하면 폭력이 된다. 사람들이 편하게 살려면 아무래도 생각으로 사는 사람보다는 몸으로 사는 사람이 위정자가 되는 게 나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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