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문명 속에서 백제를 만나다
고대문명 속에서 백제를 만나다
  • 연숙자 기자
  • 승인 2008.09.18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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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문화 물꼬를 찾아서 … 중국하남성 박물관 탐방
하남성박물관-중국의 대표적인 박물관 중 하나로 중국의 역사를 다 볼 수 있다고 말할 만큼 소장 유물의 규모가 방대하다.
세종·우륵 합작품 '편종' 전시

용종 발굴 음악사 발전 확인

충북박물관협의회(회장 김영주)는 지난달 26일부터 31일까지 중국 하남성 일대를 탐방하는 박물관역사기행을 다녀왔다.

충북도내 12개 박물관 관장과 함께 동행하며 둘러본 중국 하남성 일대의 박물관은 규모나 방대함에서 고도의 중국, 문화강국으로의 중국을 새롭게 바라보고 잠재된 중국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었다.

중국의 하남성(河南省)은 중국고대문명의 발상지였으며 중국의 7대고도 중에서 백제 문화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낙양과 개봉이 하남성에 속해 있다.

그리고 하남성의 성도 정주와 도자의 뿌리 여주, 불교문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세계문화유산 용문석굴 등은 아시아 문명의 고리를 연결하는 중요한 키워드였다.

이에 탐방지를 중심으로 우리나라 역사 속에 어떤 영향을 미치며 발전해 왔는지 살펴본다.

◇ 정주의 하남성 박물관

중국 4대 박물관의 하나인 하남성 박물관은 천문대를 본떠서 지은 건물로 변화하는 중국의 현재를 그대로 담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10만여 평에 이를 정도로 큰 박물관에는 앙소문화와 용산 문화의 신석기 시대 출토품과 시내의 상성유적에서 발굴된 청동기, 자기 등 귀중한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에서 만난 신석기 유물들은 우리나라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토기나 석기 등으로 널려 있다는 표현이 적당할 만큼 숫적으로 방대했다. 박물관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편종이다. 우리나라에선 세종과 우륵의 합작품으로 궁중음악 시대를 연 편종으로 알려졌지만 중국은 BC 770년 춘추시대 초나라의 무덤에서 용종 26개가 발굴되어 중국 음악사의 발전을 확인시켜 줬다.

하남성 박물관은 정기연주회를 열어 내방객들에게 중국 궁중음악을 선보이고 있었다.
여요-여요는 중국 여주의 도자기를 지칭하는 말로 관요가 생겨나며 쇠퇴기를 맞다 현대에서 새롭게 전통을 잇고 있다.

◇ 도자의 뿌리, 중국 여주
무덤 부장품 촛불-중국 낙양박물관에는 백제금동향로와 비슷한 형태의 촛대가 무덤에서 출토, 전시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도자로 유명한 여주는 중국에서도 도자의 도시로 유명하다. 온화하고 파란 하늘을 품은 빛으로 유명한 중국 여주에서 생산하는 도자기는 북송시대 청자로 여요(汝窯)라 칭한다. 이곳에서 만든 청자는 회백색 소지에 황록색이 도는 짙은 청록색 청자 유약을 입혀서 깊은 인상을 준다.

제작된 도자기들은 북송의 궁정에서 사용하기 위해 특별히 설치한 가마 즉 관요의 제작품인 어기였기 때문에 매우 신중하고도 정성스럽게 제작되었다고 한다. 여요는 나라에서 운영하는 관요가 생겨나며 폐쇄되었으나 중국 여주의 장인들이 전통의 맥을 이으며 도자의 명성을 되찾고 있다.

이곳에서 출토 전시된 도자기 중 둥근 테두리를 두른 도자굽은 우리나라 고려청자에 차용되며 고려청자의 멋을 드러내는데 고유의 멋스러움으로 발전한다.

◇ 백제 문화가 느껴지는 낙양

낙양은 기원전 770년 주(周)나라의 도읍을 시작으로 후한, 삼국시대의 위, 서진, 북위, 수, 무주, 오대후당에 이르기까지 9왕조의 도읍이었다. 역사의 기원이 긴 만큼 우리나라 문화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다.

당나라 수도였던 낙양에서는 고구려나 백제 유민들의 무덤이나 묘지(墓誌)도 다수 발견되었다. 묘지명을 통해 확인된 인물로 백제 의자왕의 아들 융과 고구려 연개소문의 장남인 천남생, 남생의 아들 헌성, 헌성의 손자 천비 등으로 삼국시대와 낙양의 연관성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가하면 낙양박물관에는 백제금동대향로와 비슷한 형태의 촛대가 눈길을 끈다. 무덤 부장품으로 백제금동향로처럼 지하세계와 지상세계로 조각, 죽은자를 위로하는데 사용했다고 한다. 또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오수전을 제작한 거푸집이 전시되어 백제와의 문화교류를 유추하게 한다.
한원비림-문화 강국 중국의 힘이 그대로 느껴지는 한원비림은 이공도 문화우공이 조성한 박물관이다.

◇ 거대한 문자의 세계, 비림박물관

중국의 힘이 문자의 힘임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비림박물관이다.

중국 문화재급 금석문 3700여점이 소장된 이곳은 이공도 문화우공이 자신의 전 재산으로 조성했다. 박물관이란 딱딱한 의미보다는 인공적으로 공원을 조성한 뒤 금석문을 배치해 자연스러움을 살렸다. 중국인들이 문자에 대한 자부심이 큰 만큼 비림박물관에 대한 애정도 커 보였다. 주변국과의 문화교류에서 가장 우선 순위로 시작하고 있는 서예교류는 한·중·일의 공감대를 형성하며 중국문화의 확산을 가져오는 원천인 듯싶었다. 오랫동안 중국과의 문화교류 물꼬를 터온 허유 한국비림박물관 관장은 이공도 선생과의 친분으로 민간외교 차원에서 한국의 이미지를 격상시켜주고 있었다.
용문 석굴-중국 3대 석굴 중 하나로 불교문화의 전파과정과 함께 통일신라시대 석굴암이 조성된 배경도 알 수 있다.

◇ 석굴암의 기원, 용문석굴

중국의 3대 석굴로 평가받는 용문석굴은 규모부터 사람을 압도하는 힘이 전해진다. 크고작은 석굴들은 이허강을 사이에 두고 수만개가 형성되어 마치 벌집같은 인상을 준다. 그중 봉선사는 당나라 측천무후가 비로사나불의 모델이 되었다고 알려지며 용문석굴의 백미로 꼽는다. 중성적 이미지의 형상은 여성스러움 속에도 권위가 느껴진다. 인도에서 시작된 불교는 중국으로 전파되며 아시아를 지배하는 문화로 자리잡는다. 이는 다시 주변국으로 파생되며 중앙집권을 필요로하는 우리나라 삼국시대 때 불교문화의 꽃을 피운다. 석굴의 전래는 통일신라에서 정점을 이루며 전세계 석굴의 정수인 석굴암을 탄생시킨다. 이는 용문석굴과는 다른 불상을 만들어내며 독특한 우리만의 불교유물로 승화시켰다.

중국에서 비롯된 문화적 파생이 5000년 역사를 지닌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다양한 모습과 형태로 생활속에 스며들며 깊숙한 연관성을 보여주었다. 특히 원류로의 도도함과 문화저력이 유구한 역사 속에 내포되어 있는 중국의 유물들은 21세기 문화적 힘으로 작용되며 박제된 역사가 아니라 뜀박질하며 달려가는 생생한 오늘의 중국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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