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추석
최악의 추석
  • 이재경 기자
  • 승인 2008.09.16 22: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데스크의 주장
이 재 경 부국장 <천안>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가고 예년과 다름없는 추석을 보냈지만 살림을 하는 주부들은 그야말로 전쟁과 같은 명절을 보냈다. 물론 차례상 비용 때문에 안절부절해야 했던 서민,중산층의 얘기다.

대한주부클럽과 서울시 농수산물공사 등 소비자 관련 기관단체가 추석전 일제히 발표한 4인 가족 기준 추석 상차림 예상비용은 대개 13만원에서 16만원대 정도. 지난해에 비해 10여%, 비교적 조금 오른 수치였지만 시장에서의 주부들의 체감 정도는 훨씬 더 가혹했다. 100g에 7000원 안팎인 쇠고기를 한우로 두근만 사도 그 값이 10만원이니 말이다. 어지간한 크기의 국산 참조기 한마리 값이 5만∼6만원을 호가했으니 쇠고기 두근과 조기 한마리 값만 따져도 15만원이 훌쩍 넘는다.

사정이 이러니 다른 어느해 보다 추석 차례상에 수입산이 넘치게 됐다. 고사리와 도라지, 조기 등 생선류가 중국이나 북한산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호주산 쇠고기는 기본이요, 촛불시위까지 벌였던 주부들이 미국산 쇠고기를 식탁에 올려놓았다 한다. 그렇게 수입산을 끼어 간신히 차례상을 마련했지만 그 비용이 30만원은 보통이다.

추석 전 한 신문이 '순 국산으로만 10명 정도가 치를 차례상을 차릴 경우 100만원이 훌쩍 넘을 것'이라고 보도한 내용이 전혀 사실무근이 아니다. 조상들께서 서운해하셨을지는 몰라도 그래서 이번 추석은 전에 없이 수입산 상차림이 대세를 이뤘다. 유래없는 경제불황과 물가고 때문에 빚어진 우리들의 쓸쓸한 자화상이다.

명절이면 주고받는 선물 풍속도도 바뀌었다. 지갑이 홀쭉해진 이들이 과거와는 달리 추석 선물을 실속형으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경제사정이 좋아지면서 자취를 감췄던 설탕, 식용유, 치약, 비누, 밀가루 등의 실속형 선물세트가 이번 추석 대목때 날개돋친 듯 팔렸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고물가와 샐러리맨들의 얄팍해진 지갑 때문에 대개의 사람들이 과거에 선호했던 세련된 고가의 선물을 실속형으로 바꿔버렸다.

인터넷쇼핑몰인 옥션에서 쌀을 판매하고 있는 한 농민은 지난해보다 판매량이 2배나 늘었다고 함박웃음이다. 경제사정이 어렵다보니 선물을 하는 쪽에서 많은 이들이 쌀을 구입해 전달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이마트에서 이번 추석 때 가장 매출을 많이 올린 효자 상품은 샴푸와 비누, 치약 등을 꾸러미로 묶은 1만원 미만의 초저가 상품이었다.

이런 때문인지 올 추석 대목을 기대했던 대형할인점들은 울상을 지었다. 이마트가 2%나 매출이 줄었으며 특히 정육과 과일의 매출이 4∼5%나 줄었다고 한다. 반면 1만∼2만원대 실속형 선물세트를 팔고 무료배송을 해준 옥션과 G마켓, 인터파크 등의 온라인쇼핑몰이 지난해에 비해 50%이상의 매출 신장세를 보이며 큰 재미를 봤다.

이런 가운데 서민, 중산층에도 끼지 못하는 극빈계층의 추석맞이가 최악이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린다. 평소라면 돈을 풀어 남을 돕던 이들이 경제 불황 때문에 주머니를 풀지 못하고 대기업과 부자들까지 소외계층을 외면, 고아원과 양로원 등 각종 보호시설에 답지한 추석 성품과 기부금이 지난해에 비해 크게 줄었다는 것이다. 우선 성금을 모아 불우이웃을 돕는 사회복지 공동모금회의 올 2∼8월 모금액이 557억원으로 지난해에 비해 무려 64억원이나 줄었다 한다. 불우아동을 돕는 어린이재단의 모금액도 지난해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고 한다. 또 대부분의 사회복지시설의 추석 성품이 지난해에 비해 절반 이상 줄었다.

추석 연휴기간 동안 학교에 나가지 못해 되레 점심을 굶었다는 결식아동의 사연이 들리는 한편에선 서울 강남권의 대형백화점에서 올 추석선물로 한우선물세트가 가장 많이 팔렸다는 뉴스가 씁쓸하게 귓전을 때린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