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 교육감의 교과서 채택 개입
시·도 교육감의 교과서 채택 개입
  • 안병권 기자
  • 승인 2008.09.12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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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안 병 권 부국장 <당진>

고교 역사 교과서인 '한국 근현대사'가 좌편향되었다는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부상했다.

이번에는 전국 16개 시·도교육감들이 편향된 이념을 이유로 역사교과서 채택과정에 직접 개입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역사교과서 채택 과정에 직접 개입하겠다는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협의회장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의 결정은 서울시교육청의 일방적 발표에 의한 것으로 알려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전국의 다른 시·도교육감들이 공식 합의한 사항이 아닌데도 서울시교육청이 '합의'로 포장해 발표를 강행해 뒷말이 무성하다.

현재 한국근현대사는 금성출판사의 '한국 근현대사'가 50% 가량을 점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교과서는 지난 2004년 한국사연구회와 한국역사연구회, 역사교육연구회 등 역사학 관련 학회들이 심포지엄을 열어 7차 교육과정에 제시된 집필 원칙에 충실했다며 공개 검증까지 마친 교과서다. 그러나 지난 2004년 국정감사에서 권철현 한나라당 의원(현 주일대사)에 이어 2005년 뉴라이트 계열인 '교과서포럼' 등이 친북·좌파적 내용이라며 이의를 제기했다. 하지만 역사학계는 이들의 판단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전국역사교과서모임(회장 윤종배)도 "교육청이 나서 교장 연수까지 실시해 가며 '균형잡힌 교과서 선정'을 돕겠다는 것은 결국 자신들의 생각과 맞지 않는 교과서를 걸러내겠다는 초법적인 발상"이라고 비판하는 등 신종 '코드 교과서 길들이기'에 불과하다고 반발하고 있다. 역사학계의 검증도 거치지 않은 채 교육현장에 일방적으로 주입하려는 발상은 위험천만이다.

정치권의 보수층은 그간 '잃어버린 10년', '좌파·친북' 등의 단어를 만들어내면서 교과서 내용의 수정 움직임을 지속적으로 보여 왔다. 이는 교육적 목적이 아닌 정치적 맥락이 더 강할 수밖에 없다.

교과서는 특정 이념만을 전달해서는 안 된다. 좌편향을 바로잡는다는 구실로 우편향하려는 자세도 정당화 되지 않는다. 역사 교과서는 실증사료에 바탕해 정확한 해석을 필요로 한다. 자신들의 이념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입맛에 맞는 교과서를 선정하려는 태도는 분명 잘못이다.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채택과 관련해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교육의 자주성 원칙이다. 실제로 교육감에겐 교과서 채택에 아무런 권한이 없다. 검정교과서의 경우 채택권은 교과협의회나 학교운영위원회 등 학교 구성원에 있다. 그런데도 교장 연수란 이름으로 특정교과서를 사용하지 않도록 선택권을 가진 교장들을 압박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이는 교육감의 월권행위다.

교육계는 최근 부산·충남·서울교육감 직선 결과, 국민의 무관심, 투표율 저조의 문제점이 발생하자 대안으로 정치권에서 정당공천제와 러닝메이트 논의가 불거지자 "미래 교육을 위해서는 위험한 발상"이라며 분명한 반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헌법에 '교육의 자주·전문·정치적 중립성'을 규정한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에 교육감 후보의 정당 추천 배제를 못박았다.

교육감 선거에 나선 후보가 이념 성향이 같다고 해서 특정정당의 지지를 공개적으로 받아 당선된다면 정치권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역사 교과서의 채택은 학계에서 검증된 내용이 최우선돼야 한다. 교육감이 나서서 좌편향, 우편향을 논할 사안이 아니다. 인기 위주의 정책을 선호하는 정치 바람에 교육이 바람을 타기 시작하면 교육의 백년대계는 공염불이 되고 만다.

교육의 정치중립을 법으로 정해놓은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교육감은 정치적 외풍으로부터 교육을 보호해야 한다. 교육은 정치에 끌려서도, 휘둘려서도 안된다.

교육감 스스로 중심을 잡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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