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2. 문백전선 이상있다
292. 문백전선 이상있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9.01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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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보무사<607>
글 리징 이 상 훈

"교천은 악명 높은 흑성산 두목의 장남이 아닙니까?"

목천은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조금 끄덕거렸지만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 아직 찐하게 남아있는 찝찝한 기분만큼은 영 지울 수가 없었던지 이맛살을 살짝 찌푸리며 다시 물었다.

"그런데 우리가 대체 무슨 구실을 붙여가지고 그 쥐새끼 같은 교천을 풀어줍니까 놈은 우리 국경 안으로 도둑고양이처럼 살살 들어와 마을 처녀를 강간한 후 몰래 달아나다가 우리 병사들에게 들켜서 극렬하게 저항을 하다가 잡혔던 파렴치하기 짝이 없는 범죄자입니다. 게다가 국경 근처 사람들을 늘 괴롭히며 재물을 약탈하곤 했었다는데 어찌 그런 놈에게 체벌도 가하지 않은 채 그냥 풀어줍니까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긴 합니다만, 그 교천이란 놈은 저 악명 높은 흑성산 두목의 장남이 아닙니까 저런 놈을 풀어줄 바에야 그보다 죄가 조금 덜한 자들을 몇 명 골라 풀어주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어허! 별 볼일 없는 것들을 백 명 천 명 풀어줘 본들 우리에게 무슨 득(得)이 되어 돌아오겠는가 그래도 제법 값어치가 나가는 놈을 풀어줘야만 우리가 기대를 걸어볼 수 있는 것이고 잘하면 그 값이 몇 배로 나올 수 있는 것 아니오 기왕에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사실 교천이란 놈을 파렴치한 강간범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소이다. 깊은 산속에 나물 캐러 들어 간 연춘이란 처녀가 무슨 인연으로 그리 되었는지 모르지만 저 교천이란 놈과 못 이기는 척 배꼽 도장을 찐하게 몇 번 찍어보고는 그 황홀한 맛을 못 잊어 밤마다 자기 방 안으로 그를 몰래 불러들이곤 했었다는 사실이 우리가 조사를 해본 결과 밝혀지지 않았소 청춘 남녀가 서로 눈이 맞고 죽이 맞아 놀아날 만큼 실컷 놀아나고는 놈이 야음(夜陰)을 틈타 국경을 몰래 빠져나가려다가 우리 병사들에게 들켜서 잡혀왔다고 하면 놈의 부도덕함만을 탓할 수는 없는 것이외다. 게다가 연춘이란 그 계집은 교천이 잡혀서 감방에 들어가자마자, 개인적으로 몰래 찾아가 먹을 것을 넣어주려다가 그만 발각이 되어 지금은 제각각 다른 감방 안에 갇혀 지내는 꼴이 되어있지 않소이까"

"하지만 솔직히 저는 걱정이 되옵니다. 흑성산의 두목은 우리에게 사로잡힌 아들 교천을 구해내고자 무던히 애를 써왔습니다. 이제까지 우리 병천국 백성들에게 빼앗아간 재물들을 곱절로 이자 쳐서 되돌려주겠다고도 했고, 자기들 근거지를 몇 십리 밖으로 물러나겠노라는 제의도 해왔었습니다. 그러나 교천이란 놈은 나름대로 훌륭한 인질감이기에 우리는 놈을 이 핑계 저 핑계 대가며 아직까지 돌려주지 않고 있지요. 게다가 일전에 놈은 자기 몸에 채워놓은 쇠사슬을 끊어내고 몰래 도망쳐 나가려다가 우리 병사들에게 들켜 즉사하게 두들겨 맞고 감방으로 다시 돌아간 적도 있었습니다.

이런 저런 사실 등등을 놓고 볼 때 우리가 놈을 아무런 조건 없이 그냥 자유롭게 풀어준다고 해서 놈이 이것을 감사하게 여길는지 알 수 없는 일이옵니다. 놈을 괜히 풀어줬다가 아무런 득도 없이 오히려 우리에게 해가 된다면 공연히 긁어부스럼을 한 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그때 놈이 저 혼자 탈출을 하고자 했었다면 그다지 어렵지 않게 성공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놈은 하필이면 다른 감방 안에 갇혀있던 처녀(연춘)까지 무리하게 함께 데리고 도망을 치려다가 결국 덜미를 잡힌 것 아니오 그러니 우리가 기왕에 선심을 써서 놈을 풀어줄 바에야 놈이 좋아하는 처녀 연춘도 함께 데리고 가도록 해줍시다."

"허어! 아무튼 이제까지 제가 형님의 말을 들어가지고 손해를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으니 저는 그저 형님의 말씀에 따르겠사옵니다."

목천은 빈 입맛을 쩝쩝 다시면서 마침내 결심을 한 듯 이렇게 말했다.

"목천! 허락해 주어 정말 고맙소! 내 아무런 뒤탈이 없도록 아주 깔끔하게 일을 잘 처리해 놓을 것이오니 목천 아우는 그리 아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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