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촨성 대지진과 낯설게 하기
쓰촨성 대지진과 낯설게 하기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5.16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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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정 규 호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독일의 극작가이자 연극이론가인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

cht.1898∼1956)는 연극적 환상을 일으키는 전통에서 벗어난 서사극 이론으로 세계 연극사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그의 이론은 관객이 눈앞에서 벌어지는 연극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소위 아리스토텔레스의 전통방식을 거부하는데서 출발한다.

연극은 관객들에게 무대에서 벌어지는 일과 등장인물의 존재를 믿게하거나 동화하도록 해서는 안되며 서사적(이야기체, 비(非)극적)방법이 적용돼야 한다는 브레히트의 이론은 소위 '낯설게 하기'의 전형이다.

거리감과 소외(疏外)효과(Verfremdungseffekt)에 바탕을 두고 있는 브레히트의 이론은 연극을 보고 있는 관객에게 연극은 연극일 뿐 현실이 아님을 상기시키는 장치들을 적극 활용할 것을 주문한다.

브레히트의 작품 가운데 '쓰촨(四川)의 착한 여인'은 5월12일 발생한 대지진의 재앙과 맞물리면서 묘한 중첩이 있다.

브레히트는 이 작품에서 착한 사람을 찾기 위해 지상에 내려온 3명의 중국 신(神)을 등장시키면서 소돔에 내려온 여호와를 유추할 수 있도록 한다.

지상의 착한 사람이라고는 주인공인 창녀 셴테 만이 찾아볼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그녀의 남장행세와 끊임없는 헌신에 대해 브레히트는 작품 서문에서 "인간이 인간에 의해 착취되는 모든 장소를 상징하는 이 우화 속의 쓰촨지방은 이제는 이미 그러한 장소가 아니다"라고 지적한 바 있어 마치 오늘의 현실을 예언한 듯하다.

'쓰촨의 착한 여인'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극단적인 착함을 거듭하고 있는 주인공을 통해 역설적으로 이상적인 인간에 대한 경이로움을 말한다. 무모할 정도로 지속되는 선(善)에 대한 거부감이 연극을 통한 '낯설게 하기' 혹은 소외효과를 겨냥하는 브레히트의 작품 '쓰촨의 착한 여인'이 대재앙으로 두려운 그렇지만 엄연한 현실이 돼버린 현실과 오버랩 되면서 인간의 욕망을 끝없음을 한탄하게 되는 5월의 다시 옴이 서글프다.

싼샤(三峽)댐이 이번 대지진의 원인 가운데 하나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으며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댐의 건설은 어쨌든 인공이 자연을 짓누르는 부조리의 현실을 만들고 말았다.

바로 일정한 거리를 두고 본질을 파악해야 한다는 브레히트의 소외효과이론은 이 참담한 현실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무조건적 동질화에 비해 훨씬 설득력이 있다.

5·18과 5·16이라는 숫자적 상징성으로 얼룩진 한국 현대사의 질곡에 다시 이웃나라 중국의 5·12 비극이 겹쳐진 5월은 여전히 시퍼렇게 멍든 상태로 우리에게 기억되고 있다.

그 사이 딸에게서 전해들은 율량중학교 이종관 선생님의 훈훈한 이야기는 스승의 날이 포함된 이 5월에 사뭇 파릇파릇하다.

이 선생님은 어느 학생에게 편지를 썼다. 시험을 망치고 울고 있는 학생에게 "선생님은 너의 눈물이 자랑스럽다"라는 격려는 차별하지 않는 인간의 본질이다.

비록 다른 급우들조차 (그녀가) '우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일 만큼 성적이 뛰어나지 않았던 평범함을 일깨우는 이 한마디는 한 사람의 일생을 바꾸는 혁신이 될 것이다.

바로 본질을 향해 끊임없이 제기하는 현실과의 '낯설게 하기'와 '소외효과'의 겨냥은 이처럼 연극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충분한 자극이 된다.

비열한 의미에서의 소외는 왕따를 만들게 되지만 현실을 직시하면서 인간과 본질을 추구하는 브레히트적 소외는 새로운 힘을 만든다.

올림픽으로 집체화되는 중국과 입시에 몰입할 수밖에 없는 한국의 어린 학생들의 현실은 본질에 대한 가치존중을 원한다. 자연 역시도 마찬가지라고 5월은 새삼 절규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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