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닥거리는 끝났다
푸닥거리는 끝났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4.10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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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한 덕 현 <편집국장>

결국 한나라당이 웃었다. 그들의 소원대로 이명박 대통령의 안전운행을 보장할 과반수를 확보했다.

그러나 결코 기뻐할 일이 아니다. 이번 총선은 총체적인 실패작이었고 그 업보는 앞으로 여야가 똑같이 져야 한다.

18대 총선은 대한민국에 또 하나의 기발한 정치적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다름아닌 '응석'의 정치다. 선거 기간 내내 최대 화두는 이념과 정책이 아니라 당과 후보를 최대한 연약하게치장하는"살려주세요"였다.

제발 안전의석을 달라(한나라당), 제발 견제세력을 만들어달라(통합민주당)와 국민도 속고 저도 속았다(친박연대)는 응석만 넘쳐났다. 역대 어느 선거에서도 이런 나약한 읍소작전은 일찍이 없었다. 과거 어두운 시절에도 선거는 국민들에게 설레임을 안겼다. 차라리 독재 대 반독재, 민주 대 반민주의 고전적 대립과 패기가 그리웠다.

지금 국민들은 천정모르는 물가로 신음하고 있는데, 하다못해 이에 대한 속시원한 대안이나 해법을 내놓는 정당도 없었다. 비록 립서비스라도 말이다. 오로지 처음부터 끝까지 어린애같은 투정으로만 선거전을 치른 것이다. 그러니 신바람이 날 리가 없고, 당연히 투표율은 역대 최하로 떨어졌다.

충북의 경우 최대 압권은 혜성(?)같이 나타난 박정희의 둘째딸 근령의 한나라당 선대위원장 임명이었다. 어머니가 이곳 출신이니 나를 봐서라도 찍어달라는…. 세상에 이런 황당한 투정이 또 어디 있나. 그런 식으로 정치판에 끌려 나와 엉거주춤 마이크를 잡을 게 아니라 본인의 주변관리나 제대로 했으면 하는게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이곳 유권자를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저런 발상이 나올까 하는 자괴감만 잔뜩 들었다.

정치에서 '안정론'이나 '견제론'은 둘다 명분이 있다. 그것이 합목적으로 가기 위한 조건이나 전제가 될 때 그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선 둘다 명분을 잃었다. 국민들에게 한쪽은 밀어붙이겠다는, 다른 한 쪽은 정권을 빼앗긴 화풀이를 하겠다는 집착으로만 비쳐졌을 뿐이다.

많은 국민들은 한나라당의 안정론을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반도가 두동강나고 영어가 모국어가 되는가 하면 멀쩡한 전봇대가 느닷없이 뽑히는 것쯤으로 이해했다. 대운하처럼 국토에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엄청난 국책사업이나 영어몰입교육은 그 당사자인 국민과 교육주체로 하여금 판단케 해야 하고, 전봇대 철거는 한전 직원에게 맡기면 된다.

민주당의 견제론 역시 바로 엊그제 국민들로부터 심판받은 주제에 반성은커녕 다시 상전노릇 하겠다는 철딱서니 없는 아집으로 비쳐졌다면 부인하겠는가. 진정한 야당역할은 소수 의석으로 고달프게 수행해야 의미가 있고, 그것이 야당의 숙명이다.

어차피 정치의 본질은 타협과 협상, 조율이다. 한국적 학습효과에선 절대다수 의석의 여당도 두렵고, 거대 야당도 달갑지 않다. 다행스럽게도 18대 총선은 비록 불균형이지만 주요 정당에 골고루 의석을 안겼다.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기도, 되나가나 딴지를 걸기도 서로 버겁게 됐다.

이재오 이방호 등 소위 실세라는 사람들이 줄줄이 낙마한 것은 어찌보면 이번 총선의 백미다. 까불고 설치면 민심은 반드시 심판한다.

결국 어느 당도 완벽한 승리를 주장하지 못하게 됐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치열한 정치술이다. 끝까지 대화하고 마지막까지 타협하는 그런 정치를 기대한다. 승자와 패자라는 이분법적 흑백논리가 아닌 상생의 아름다운 동행을 학수고대하는 것이다.

이제 선무당들의 푸닥거리는 끝났다. 그리고 그 집 앞에는 떡이며 이밥이며 반찬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하지만 이것이 더 이상 혼돈이 아닌, 무당 굿이 추구하는 부정과 살(煞)을 풀어주는 주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그래야 앞으로는 총선이라는 굿이나 보면서 떡까지 얻어 먹을 수 있잖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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