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고운 시어로 만드는 '작은 기쁨'
맑고 고운 시어로 만드는 '작은 기쁨'
  • 김금란 기자
  • 승인 2008.04.08 23: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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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수녀, 8번째 시집 '작은 기쁨' 출간
'엄마가 떠나신 뒤 / 나의 치통도 더 심해졌다 / 무엇을 먹어도 / 맛을 모르겠고 / 아프기만 하다 // 엄마가 떠나신 뒤 / 골다공증도 더 심해졌다 / 구멍 난 뼈엔 바람만 가득하고 / 조금 남은 기쁨의 양분도 / 다 빠져나갔다 // 그러나 더 두려운 아픔은 / 다른 사람들의 눈에 안 보이는 것 / 예쁘던 삶이 갑자기 시들해지는 것 / 하고 싶은 일이 아무것도 없고 / 하루하루가 서먹한 것'(사별일기 中에서)

올해로 서원(誓願) 40년을 맞는 이해인 수녀(63·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수녀회)가 자신의 8번째 시집 '작은 기쁨(열림원·204쪽·7500원)'을 펴냈다. 6년만의 일이다.

저자는 지난해 9월 어머니를 잃었다. 엄마를 보내고서야 기도처럼 시가 쏟아졌다고 고백한 이해인 수녀의 주옥같은 103편을 수록한 이번 시집은 지난 2002년 출간돼 20쇄를 넘긴 '작은 위로'와는 자매지다.

저자는 지난 1964년 수도원에 입회했고 수련기 4년을 거친 뒤 1968년 '청빈·정결·순명의 삶을 살겠다'는 공적인 약속(서원)을 했다.

저자는 수도원에 들어간 이유에 대해 "초등학생 때 13살 위인 언니가 수녀원에 들어갔어요. 언니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수도생활에 입문하게 됐지요. 첫 서원 땐 수도생활의 무게와 깊이를 다 알지 못하고 무조건 좋아한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세월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법. 저자의 나이도 어느덧 이순을 훌쩍 넘겼지만 그녀가 쏟아내는 언어는 세월을 비켜가는지 여전히 맑고 곱다. 저자의 품에 안기면 쓰라린 상처는 아물고, 미움과 분노는 눈을 감으며, 메마른 영혼은 마음을 열게 만든다.

그래서일까. 지난 1976년 저자의 종신서원과 더불어 세상에 나온 첫 시집'민들레의 영토'는 오늘날까지도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동안 7권의 시집, 7권의 에세이집, 8권의 번역서 모두 종교를 초월한 스테디셀러가 됐다.

주변의 작은 기쁨들을 일깨워 일상의 행복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는 저자는 "시를 통해 누군가의 마음을 하얗게 만들고 싶다. 그리하여 한 톨의 시가 세상을 다 구원하진 못해도, 작은 기도는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한비야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은 추천의 글에서 "이해인 수녀님의 시는 읽기만 해도 착한 사람이 좋은 사람이 되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장영희(서강대 영문과) 교수는 "입가에 스치는 작은 미소, 함께 걷자고 내미는 손, 따뜻한 마음이 담긴 말 한마디 등 수녀님이 주시는 '작은 위로'는 어쩌면 지금 우리가 필요로 하는 전부인지도 모른다"고 표현했다.

이번 시집에는 박경규 한국예술가곡연합회장이 곡을 붙인 '작은 기쁨'의 멜로디 악보가 함께 실렸으며, 이 곡은 오는 15일 서울 여의도 영산아트홀에서 열리는 '음악저널' 창간 기념 음악회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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