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론과 가난, 그리고 지도자
군주론과 가난, 그리고 지도자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3.28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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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정 규 호 <청주시 문화산업진흥재단>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을 통해 정치행위가 종교적 규율이나 전통적인 윤리 가치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국가의 이익과 확장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도덕성이나 사사로운 정 따위는 단숨에 버릴 수 있어야 진정한 군주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 근간이 되는 '군주론'은 어쨌든 근대 정치학의 초석으로 대접받으면서 고전의 반열에 당당하게 자리잡고 있다.

강력하고 절대적이며 국가의 안정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군주를 이상적으로 제안했던 마키아벨리도 자신의 생애를 돌아보게 되는 말년에는 "나는 가난하게 태어났다. 그래서 즐기기 전에 먼저 고생하는 것을 배웠다"고 고백한 바 있다.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신용불량자의 양산이라는 병폐를 만든 과거정부의 무분별한 신용카드 남발과 이로 인한 장기적 경기순환의 왜곡에 대한 구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전망이다.

국민연금을 담보로 하든 다른 해결책을 모색하든 간에, 일단 신용불량자의 낙인을 지우고 건전한 경제활동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회복시키는 일은 나름대로 타당성이 있다.

다만 신용불량은 마키아벨리가 고백한 '가난'과는 다른 것이며, 더 더욱이 테레사 수녀의 어록에서 말하는 "가난은 놀라운 선물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자유를 줍니다"에서의 '가난'과는 큰 차이가 있다.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4월9일 제 18대 국회의원 선거일을 축제로 만들자는 주장까지 제시하면서 지난해 '텔미' 선풍의 주역인 원더걸스를 동원해 선거의 즐김을 부추기고 있다.

이쯤에서 굳이 '군주론'과 '가난', 혹은 신용불량자 구제를 위한 '정치의 역할'을 들먹이는 것은 전혀 생소하거나 새삼스럽지 않다.

다만 유권자의 선택이거나 국민의 부름을 받음으로 대의되는 정치지도자의 표상은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만큼 정치에 관심이 많은 국민은 흔치 않다.

하물며 정치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는 한국 언론의 현실 또한 심히 못마땅하다.

삼삼오오 모이기만 하면 정치가 화두가 되는 세태에 실망하면서도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것은 올바른 지도자의 선택이 우리의 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가난'은 불편하다.

궁핍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대학등록금을 걱정해야 하고, 또 생계가 위협받는 현실에서도 스스로 그 블랙홀을 빠져 나오기는 쉽지 않다.

심지어 자치단체의 구원정책조차 조건을 채우지 못하는 극빈자에게 서슴없이 도와줄 길을 찾아주고자 노력하는 자치단체장의 모습은 매우 바람직하다.

휴일, 혼자 갓 태어난 손녀딸을 돌보다 관내에서 산불이 발생하자 전혀 망설임없이 손녀를 껴안고 현장에 나선 남상우 청주시장의 일화는 얼마전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귀감이 되고 있다.

겨우 내세운 보증인조차 조건에 못미치는 가난의 굴레를 안타깝게 여기며 도울 길을 찾기에 동분서주하는 시장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커다란 희망이다.

할 일 제대로 하는 책임감과 손길이 제대로 닿지 않는 그늘진 곳을 염려하는, 그리하여 '가난'을 이해하고 이를 구제하려는 작은 일로부터의 정성은 지도자의 가장 큰 덕목일 것이다.

굳이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사람다움을 선택의 준거로 삼는다면 정치를 탓하거나 혐오할 필요조차 없어진다.

그런 지도자는 희망을 만들고 그 희망은 기쁨으로 승화되면서, 시민으로서의 자랑스러움이 전이될 지니.

그런 즐거움을 기대하는 선거가 됐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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