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가 버린 꿈
날아가 버린 꿈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3.26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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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목련
김 영 미<수필가>

한 동안 소식 뜸하던 S에게 전화가 왔다. 힘이 하나도 없는 목소리다. 어디 아프냐고 묻는 말에 대뜸 술 한 잔 사달라고 한다. 내가 근무하는 곳으로 찾아온 그는 전에 없이 초췌한 모습이다. 어렵게 말문을 연 그에게 들은 소식은 충격이었다.

그는 시골에서 부모님 모시고 농사지으며 일용직 근로자로 일하는 착실한 그야말로 전형적 농촌 총각이다. 시골에서 농사짓는다면 결혼하지 않으려는 우리나라 처녀들의 그릇된 사고방식으로 인해 그에게 결혼은 요원한 꿈이었다. 노총각으로 늙을세라 서두르는 그의 부모님은 국제결혼 해서 잘 살고 있다는 이웃마을 사람의 이야기에 현혹되어 아들을 베트남 처녀와 결혼시켰다.

실수투성이지만 농사일 잘 하고 집안일이며 우리나라 음식을 배우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어여쁘기만 했단다. 그런 그녀에게 S는 물론 시부모님도 푹 빠지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우리말을 배우러 군민회관에도 나가고 국제결혼 한 사람들과의 모임에도 나가며 제법 잘 적응하는 듯했다고 한다. 그녀의 외출이 잦아지면서 급기야는 얼마 전 이웃마을 베트남 여자들 셋과 함께 자취를 감추고 만 것이다. 결혼한 지 거의 일 년 만이다.

예쁜 아기 낳아서 5년 후엔 아이를 안고 같이 그녀의 고향 베트남에 가자는 약속으로 한껏 부풀어 있던 그였다. 양쪽 소매 깃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는 30대 후반의 남자가 마치 대여섯 살 먹은 어린아이 같다. S의 성격에 마음과는 달리 살갑게 하지 못했을 테고 그렇다고 따뜻한 말 한마디도 제대로 못했으리란 생각이 든다.

결혼 후에 우연히 M면에서 만났을 때 그는 다른 사람 같았다. 깔끔하고 단정한 옷차림에 머리엔 무스까지 바른 모습이 꾀죄죄한 평소 모습과는 아주 달랐다. 입가의 미소만큼이나 결혼생활이 퍽 행복하구나 생각했는데.

무슨 말로 위로해야 할지 몰라 그의 손만 꼭 잡아 주었다. 농사 일로 또 허드렛일로 거칠어지고 투박해진 성실한 손이건만 어찌 이 손을 믿지 못했을까.

외국인과 결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언어소통이 불편하다. 그런 계기로 종종 다툼도 있고 의견이 맞지 않아 서로 많은 스트레스를 받기 마련이다.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은 물론 필요조건이다. 적어도 한국어를 잘하게 될 때 까지는 충분한 우리 문화의 가르침과 사랑, 그리고 특히 남편의 배려가 필요하지 않을까.

어린 나이에 낯설고 물 설은 이국만 리 에서 얼마나 고향이 그립고 부모 형제가 그리웠을지 한편으론 그녀도 이해가 간다. 그러나 누구에겐지 모르게 은근히 화가 난다.

부모님도 몸져누워 계신다면서 그는 지금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라며 터진 울음보를 멈추질 못한다. 한참을 울고 나더니 빨개진 눈으로 문을 나서는 뒷모습에 날아가 버린 그의 꿈만큼 가슴이 먹먹하고 내 눈도 뿌옇게 흐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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