治山이 곧 治水다
治山이 곧 治水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3.25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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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한 규 량 <충주대 노인보건복지학과 교수>

새정부의 대운하정책에 대해 많은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운하의 목적은 크게 두가지인데 하나는 물 부족에 대비한 환경문제 해결책이고, 또 하나는 물류운송의 원활함을 위함이라고 본다. 기타 관광자원 등의 운운은 대운하의 부산물이지 사업목적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운하사업은 치수사업이다.

운하사업의 성공과 나라의 유지존속과는 그다지 상관관계가 없다. 하든지 안하든지 그 때문에 나라가 망하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먼 훗날 실패로 귀결되면 운하를 중심으로 나라가 두 쪽이 날 수도 있다고 한다. 이런 우려의 소리가 괜한 소리만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대운하 정책에 찬성하는 이들은 해외사례를 바탕으로 성공적인 운하계획을 내세우고 있으며 여기에 청계천을 복원했던 사업도 운하사업의 계기가 되었다고 본다. 그들의 운하는 자연을 거스르지 않았고 서울은 있던 川(청계천)을 다시 살린 것일 따름이다.

치수(治水). 물을 다스리는 것은 인류가 정착하여 살기 시작한 이래로 지금까지 가장 중요했던 일들 중의 하나이다. 서양의 고전 구약성서를 살펴보면 홍수에 대비했던 노아의 이야기가 나온다. 구약성서 창세기전에 '당시 세상의 타락한 모습을 보고 이 땅을 멸하기로 결심한 하느님은 그에게 임박한 재앙을 알려주고 그와 그의 가족을 재앙으로부터 구원할 것을 약속했다. 그는 배를 만들라는 하느님의 명령을 받고 그 명령대로 땅의 모든 생물이 다시 번성할 수 있도록 모든 생물을 종류대로 암수 1쌍씩 배에 실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노아의 홍수 이야기는 바빌로니아 전승에 나오는 묵시문학적인 홍수 이야기들과 아주 비슷한데 여기서는 우트나피슈팀이 노아의 역할을 한다. 이 신화들은 주인공들이 방주를 짓고 식량을 비축하는 등 홍수를 대비한 일, 홍수로 배가 떴고 그 뒤 물이 줄어들었다는 성서에 있는 홍수 이야기가 이런 내용의 근원이 된다.

동양 성현들의 지혜를 담은 유교 고전 맹자(孟子)에도 치수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요(堯)임금 때 천하가 아직도 평화롭지 못하여 홍수가 천하에 범람하였다. 초목이 무거지고 금수가 번식하여 곡식이 자라나지 못하였다. 요임금이 홀로 이런 상황을 근심하여 우(禹)로 하여금 물을 다스리게 하니 우(禹)가 백성들과 함께 물길을 내고 둑을 쌓은 뒤에야 사람들이 곡식을 먹을 수 있었다. 당시 우(禹)가 8년 동안 치수를 하였는데 3번이나 자기 집 앞을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들어가지 못했다고 한다. 이와 같이 치수는 오랜 기간의 노력과 정성이 들어가는 일임을 알 수 있고, 우의 치수가 지혜로운 치수의 표본이 됨은 바로 자연의 형세를 이용하여 치수를 하였기 때문이다.

물의 성질은 본래 위에서 아래로 내려간다는, 그렇기에 우는 그저 여러 강들을 바다로 주입했을 뿐이다. 우는 이런 당연한 이치만으로 치수를 하여 굶주린 사람들을 살릴 수 있었던 우임금이 되었던 것이다.

위의 두 사례는 오늘날의 물 부족과는 반대의 홍수대비 치수사례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물 보존에 힘쓰는 일이 진정한 치수사업일 것이다. 물을 인위적으로 가두어서 보존하는 방법도 있지만 산을 좋아하는 필자의 견해로 볼 때 '물은 곧 산' 이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모든 강물의 발원지(發源地)는 山이기 때문이다. 단지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흘러간다'는 자연의 이치가 너무나 간단해 그것을 심오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생겨나면서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게 되는 것일게다.

따라서 치산은 곧 치수임을 알고 산을 다스리는 일에 먼저 손을 써야 할 것이다. 산은 인위적으로 만든 댐보다도 방대한 양의 물을 머금는 커다란 저장고라는 사실을 가뭄에 산을 타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治山 다음에 治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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