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총과 민예총
예총과 민예총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3.24 22: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청논단
김 승 환 <충북민예총 문화예술연구소장>

한국예총은 3월18일, 한국민예총에 대해 '지난 10년 동안 신종 홍위병의 극악함을 보여준 자신들의 모습'이라고 비난했다. 그런데 이 표현은 그 전날 발표된 민예총의 성명서에 나오는 어절(語節)이다. 민예총은 성명서를 통하여 유인촌 장관을 비판하면서 유 장관을 홍위병으로 묘사한 바 있다. 그것을 지켜보던 예총이 민예총의 용어를 빌어 민예총을 공격했다. 이렇게 하여 싸움은 민예총 대 예총/유인촌 장관의 복합구도로 전개되었다. 예총이 왜 이 문제에 개입했을까 아마도 예총은 유인촌 장관이 지적한 김정헌 한국문화예술위원장과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장 등 민예총 성향 사람들을 물러나게 하는 것이 실지(失地) 회복의 관건이라고 보았음에 분명하다.

민예총은 '완장 찬 유인촌 장관은 망언의 폭력을 멈추라'라는 제하의 성명서에서 유인촌 장관을 '낮술에 취해 폭력의 칼을 휘둘러대는 망나니', '정치나팔수'와 같은 원색적인 표현으로 격렬하게 비난했다. 사사로운 개인이 아니고 국가의 장관을 그렇게 묘사했다는 것은 분명히 적절하지는 않았다. 아마 민예총으로서는 한나라당이 적극 동의했던 공직자와 단체장의 임기를 보장하는 법률을 무시하고 마녀사냥식의 압박을 취하는데 대한 자동반사적 반격이었을 것이다. 달리 보면 주무부서의 장관이 살기(殺氣)를 띠고 공격을 하는 판세라서 고상한 언어로 점잖게 응대할 상황이 아니었을 것이다. 반면 예총은 사태에 개입한 것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정된 지점에서 비판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혹자는 예총이나 민예총이나 모두 예술을 하는 단체이므로 똑같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예총과 민예총이 통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인류예술사와 인간존재론을 낭만적으로 보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예총과 민예총이 없어질 수는 있을지 몰라도 통합될 수는 없다. 그러니까 이것은 조직의 문제가 아니고 창작방법론과 세계관의 문제다. 예술을 보는 근원적인 두 가지 관점은 인류가 살아 있는 한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것이고, 그 원리에 따라서 이름은 다를지 몰라도 미학주의 예술과 현실주의 예술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사태는 결코 간단한 것이 아니다. 수십년 동안의 한국사회사와 관계가 있고, 예술의 본질론에 관련되어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인간 존재의 문제로 환원한다.

문제의 핵심은 예술이 사회현실과 어느 정도의 거리를 가져야 하는가다. 예총은 순수예술을 표방하기 때문에 사회현실을 외면하지는 않지만 예술적 미학(美學)이 더 중요하다는 예술이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반면 민예총은 예술이 사회현실 속에 뿌리박혀 있어야 한다는 현실주의 예술이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어떤 시대나 어떤 상황에서도 예술을 보는 두 유파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문제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싸움이고, 공자와 두보의 싸움이며, 홍명희와 이무영의 싸움인 것이다.

그렇다면 충북의 경우는 어떤가. 충북예총과 충북민예총은 비교적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더러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서로를 존중하면서 각 진영의 예술미학적 목표를 실천하고 있다. 당연한 것이거니와 충북예총의 적이 충북민예총이 아니고, 충북민예총의 타자(他者)가 충북예총이 아니다. 두 단체는 예술이라는 매개를 통하여 감수성이 다른 것을 실행하는 충북지역의 예술조직일 뿐이다. 부디 충북의 두 예술단체는 이전투구를 하지 말고 서로 존중하고 보완하면서 좋은 동지적 관계를 가져야 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