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세하려면 예뻐져라
출세하려면 예뻐져라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3.20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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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한 덕 현 <편집국장>

요즘 흥미로운 책 하나가 얘깃거리다. 의사이자 과학전문 저술가인 독일인 울리히 렌츠가 쓴 '아름다움의 과학'이다.

이 책은 며칠전 '미인 불패, 새로운 권력의 발견'이라는 부제로 국내에 소개됐다. 앞에 흥미롭다고 표현한 것은 이 책이 아주 자극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슨 오감이나 본능을 건드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동안 여성의 아름다움에 관한한 보석처럼 중시되던 '이성의 체통'을 정면으로 들이받고 있다. 도발적이라고 해야 더 맞을 것 같다.

내용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렇다. 외모가 아름다워야 출세도 하고 권력도 얻는다는 것이다. 기존의 도덕관념에선 매우 공격적인 이런 의제로 인해 독일에서도 책이 나오자마자 전국을 논쟁으로 몰아 넣었다고 한다. 작가는 아름다움을 주관적인 개념이 아닌 아예 과학이라고 규정했다. 외양보다는 성품이나 성격이 더 중요하고, 아름다움은 계량·정량화할 수 없다는 통념에 비수를 꽂은 것이다. 미(美)에 대한 그동안의 이지적 접근이 얼마나 허상이었나를 실랄하게 묻고 있다. 내면의 아름다움이 외적인 아름다움보다 가치있다가 아니라, 육체적인 아름다움이 삶에 있어 아주 중요한 덕목임을 객관적인 사례를 들어 과학적으로 입증하려 한다.

우리 주변의 하찮은 예를 들어 보자. 똑같은 접촉사고를 내고도 미모가 돋보이는 여성 운전자는 상대로부터 나긋나긋한 대접을 받는다. 날씬한 미녀와 뚱뚱이가 교대로 갓길에 차를 세우고 도움을 요청한다면 결과는 뻔하다. 뚱뚱이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남성 운전자들이 미녀의 손짓엔 지나쳤다가도 다시 후진을 하면서까지 친절을 보인다. 실제로 이런 실험이 종종 있어 왔다. 술집에서도 팁은 미모에 비례한다.

'예쁘면 다 착하다'고 말한 기원전 600년의 그리스 시인 사포의 여성관이나, '아름다움은 사랑의 첫 번째 이유이자 마지막 이유'라고 설파한 플라톤의 성찰도 결국은 내면의 성숙보다는 외모에 천착한 것들이다. 변양균, 신정아가 TV에 등장할 때마다 신정아의 '초췌한 미모'에 마음이 흔들렸던 남자들도 적지 않았다.

이 책의 부제처럼 육체적인 아름다움이 새로운 권력이 된 경우는 역사적으로 숱하다. 그리고 그 권력을 만들어 준 동반자는 남자였다. 크리스틴 킬러(영국) 마타하리(프랑스) 양귀비(중국) 종쿠르(프랑스) 등 당대의 최고 권력자들에 빌붙어 세기적 스캔들을 일으킨 이들은 하나같이 미모가 출중했으며, 한국의 정인숙과 린다 김도 죄가 있다면 예뻤다는 것이다. 성격은 좀 다르지만 며칠전엔 미모의 콜걸 때문에 뉴욕주지사가 낙마했고, 5공 황태자 박철언은 잘 생긴 연하 여교수와의 관계로 언론의 표적이 되고 있다. 굳이 공통점을 찾는다면 모두 끝이 안 좋았다는 점이다.

몇 년전, 청주에선 예쁘장한 한 여성을 놓고 지역의 끗발있는 사람들이 줄줄이 구설수에 오르는 바람에 많은 얘깃거리를 만들어 냈다. 그런가 하면 강금실, 나경원 등 잘 나가는 여성 정치인들도 미모가 만만치 않다. 한때 브라운관의 신데랄라였던 신은경은 여전히 죽지 않은 미모로 정치판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분명 아름다움은 바라보는 이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한다. 어쨌든 대단한 경쟁력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아름다움에 집착하는 것은 그것이 언젠가는 사라진다는 강박관념 때문인지도 모른다.

과학은 영원하다고 한다. 하지만 아름다움과 미모는 유한하다. 제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나이가 들면 사그라진다. 여기에서 이 책 '아름다움의 과학'은 논리의 모순이 있다. 결국 아름다움은 과학이 아니다. 역사적으로도 아름다움만으로는 권력을 새로 만들기 보다는 기생하는 경우가 많았다. 얼굴 하나만 믿고 재벌가에 시집간 사람이 잘 됐다는 소식은 별로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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