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등록금
대학등록금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3.17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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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김 승 환 <충북민교협 회장>

'김교수는 그러면 등록금을 인상하지 말자는 말이오' 대답할 사이도 없이 뒷말이 이어졌다. '등록금을 올려서 학교 시설도 개선하고 교육의 수준도 높이는 것이 맞지 않소' 그러면서 약간 흥분한 어조로 '지금보다 등록금을 두 배 정도는 당장 올려야 한다'라고 단언했다.

내가 '등록금 대책을 위한 충북네트워크'에 화면으로 등장한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동료교수의 질책이었다. 그러니까 이 분의 논리는 등록금 인상=교육 수준 향상이었다. 입증할 필요조차 없는 형식논리상 모순이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 교수의 발화는 전제와 결론이 모두 틀렸다. 그러니까 1)현재의 등록금으로는 높은 수준의 교육을 할 수 없다, 2)등록금을 인상해야 높은 수준의 교육이 가능하다, 3)수익자 부담 원칙에 따라서 학생들에게 등록금을 많이 부과해야 한다, 라는 논지다.

현재의 등록금으로는 높은 수준의 교육을 할 수 없다는 전제는 부분적으로는 참이다. 그러나 등록금 인상이 교육 수준 제고를 보장한다는 것은 참이 아니다. 따라서 전제는 부분적으로는 참이고 부분적으로는 거짓이다. 두 번째 항인 논증(論證) 또한 전제의 오류로 말미암아서 참이 될 수 없다. 부분적으로 맞고 부분적으로 틀린다. 학생들에게 더 많은 등록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결론 또한 참이 아니다. 대학 재정에 문제가 있다면 학생들에게 등록금을 더 많이 부과할 것이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의 보조금 증액, 재단전입금의 증가, 사회적 지원금, 기타 수익 등으로 대학재정을 건실하게 하고, 그를 바탕으로 높은 수준의 교육을 한다'라는 것이 상식적인 답일 것이다.

한편 그 교수의 발화에는 힘의 논리도 개입하고 있다. 그는 교육 공급자의 입장에서만 등록금을 보고 있는 것이다. 반면 등록금을 등록하는 쪽의 생존에 대해서는 무시하고 있다. 한마디로 기득권 계층이자 민중들의 고통을 모르는 상류계급 교수의 무지와 오만이 숨겨져 있는 발화다. 이 논리대로라면 등록금을 가능한 한 많이 올려서 교육의 수준을 높여야 하고, 그래야 세계적인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넘어서 등록금을 걱정하는 경우에는 대학교육을 받지 않으면 된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이것이 과연 대학교수로 할 수 있는 소리인가 어려서부터 수재 소리를 듣고 시험을 쳐서 명문중고등학교에 합격했고 역시 남들이 부러워하는 명문대학에서 공부했으며 아르바이트도 하지 않고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세상 물정을 잘 몰라도 되는 대학의 교수가 됐으므로 서슴없이 그렇게 말을 할 수가 있을 것이다. 한탄스러운 현상이다.

이 문제는 교육이란 무엇인가로 환원한다. 교육을 신분상승의 수단, 경제적 성공의 조건, 투쟁을 위한 지식 축적의 현장으로 볼 수는 없다. 교육은 높은 수준의 인격을 갖춘 사회적 인간을 목표로 정신적 수양을 하면서 기술이나 지식을 습득하는 행위다. 교육은 무엇보다도 기본인권이기 때문에 공익(公益)과 평등사상에서 이해돼야 한다.

나는 이 문제로 지난 3월 12일에도 머쓱한 일을 당했다. 충북지역 16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등록금 대책을 위한 충북네트워크'의 거리 서명활동을 하던 때의 일이다. 지나가던 대학생에게 서명과 동참을 권유했다. 그 학생은 등록금 문제가 서민들의 생존과 직결되는 것이고, 또 당사자인 대학생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사안이 아니냐는 내 말에 고개를 저으면서 회피하는 것이 아닌가 사회적 문제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의 표피적인 감각만을 귀중하게 여기는 세태(世態)의 한 장면이었다.

강조할 필요도 없이 우리는 등록금 고지서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이 땅의 서민과 민중들의 입장에서 이 문제를 접근해야 한다. 등록금을 공급자나 상류계층의 시각에서 보지 말고 힘들고 어려운 서민과 민중의 시각에서 보고 교육의 공공성과 인권의 문제에서 보아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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