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물나는 청문회
신물나는 청문회
  • 권혁두 기자
  • 승인 2008.02.21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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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권 혁 두 부국장 <보은.옥천.영동>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릴 때마다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것이 부동산 투기 의혹이다. 청문회장에 서는 인물이 고도의 청렴이 요구되는 고위관료나 대학교수 출신일수록 심하다. 당사자들은 투기가 아니라 투자라고 강변하지만, 서민들은 이 나라에서 이른바 고위층이 되려면 부동산투기에서 비범한 자질을 보여야만 한다며 조소를 보내고 있다. 청문회장에 나온 후보자들에 대한 신뢰감보다는 허탈감과 배신감만 던져주는 청문회를 차라리 그만뒀으면 좋겠다는 국민도 많다.

20일 한승수 총리후보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도 어김없이 부동산 투기의혹이 제기됐다. 박정희 정권시절부터 서울 강남과 고향인 강원도 춘천 등에서 꾸준히 부동산을 통해 재산을 늘려왔다는 지적이다. 가족들까지 재산증식과정에 동참했다는 의혹이 나왔지만 당사자는 투기한 적이 없다고 전면 부인하는 종전의 청문회 행태가 이날도 그대로 재연됐다.

차기정부 조각팀은 이번에 총리와 장관을 인선하며 1차 약식검증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후보자 200여명에 대한 간단한 신상자료만 검증했음에도 불구하고 40%에 달하는 80여명이 탈락했다고 한다. 교육과학부장관으로 유력시됐다가 탈락한 어윤대 전 고려대총장이 이 범주에 해당된다. 한 총리후보는 대상자의 절반 가까이를 걸러낸 이 1차 검증을 통과한 사람이다. 조각팀이 한 후보에 대한 자체조사를 하고 이 정도면 청문회를 무리없이 통과할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청문회에서 각종 의혹들이 빗발친 것을 보면 내부검증에서 하차했다는 80여명의 전력과 흠결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간다. 이들이 나라살림을 맡겠다고 나섰다니 그 '후안무치'에 기가 막힐 따름이다.

총리후보에 대한 청문회를 앞둔 지난밤 전국의 마트와 수퍼 등에서는 라면 사재기 현상이 벌어졌다. 볼썽사납기는 하지만 라면값 100원 인상에 체면을 포기하고 마는 것이 여과되지 않은 우리 서민들의 모습이다. 시세차익이 수억원이라느니, 수십억원이라느니 하는 청문회장의 발언들이 이들 서민들의 가슴에 어떤 응어리를 남길지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북유럽의 핀란드는 국제투명성기구(TI)가 지난해까지 3년 연속 '가장 부패가 없는 나라'로 선정한 국가다. 부패를 용서하지 않는 국민들의 엄정한 의식이 사회 저변을 지배하고 있지만 물샐 틈 없는 제도와 국회의 역할 등도 청정지수를 높이는 요인으로 꼽힌다. 핀란드 국세청은 전국의 모든 은행계좌는 물론 국민들의 해외재산내역까지도 법원의 허가없이 검색할 수 있다고 한다. 이를 토대로 해마다 국민들의 소득과 재산에 대한 과세내역을 공개하고 이 과정에서 언론은 고위 공직자나 정치인, 연예인, 스포츠스타 등의 재산변동내역을 철저하게 검증한다. 재산은닉은 물론 부정한 방식의 축재 등이 드러나지 않을 수 없다. 부패에 대한 의회의 강도 높은 대응도 핀란드를 청정국가로 만드는 데 기여한다. 지난해 한 장관이 골프장 주식소유 문제로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공세를 받다가 즉석에서 사임하기도 했다.

차기 정권은 핀란드를 거울삼아 고위층의 재산과 재산증식과정을 투명하게 파악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연전에 교육부총리 낙마 후 청문회를 통과할 만한 인물을 찾지못해 후임인사에 애를 먹었던 참여정부의 딱했던 상황이 재연될지도 모른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도 1차 검증에서 80여명의 부적격자를 퇴출시키며 교훈을 얻었으리라 본다.

한 총리후보는 평생 인생의 가치를 명예에 두고 살았다며 청문회에서 제기된 의혹들을 부인했다. 라면값 인상에 명예를 거는 서민들 입장에서 평생 명예를 지키며 살 수 있었던 그는 선택된 사람이다. 총리가 된다면 자신의 명예보다 국민과 서민의 명예를 챙겨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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