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사태 그 후 2년
황우석 사태 그 후 2년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2.11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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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김 승 환 <충북민교협 회장>

바야흐로 2년 전이었다. 나에게 못마땅하다는 표정과 약간의 냉소를 덧붙여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교수가 있었다. 요지인즉, '당신이 쓴 칼럼을 보았는데 문학 선생이 어떻게 생명과학을 알 수 있을 것이며, 또 안다고 한들 그렇게 쓸 필요까지야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황우석 사태 초기의 일이다. 그 교수는 자연과학자였다. 당연히 문학선생은 생명과학을 잘 모른다. 하지만 황우석 박사의 행동양식은 논리와 문학으로 분석이 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황우석 박사의 병객(病客) 연출과 같은 행동양식은 과학적이 아니며, 과학자가 과학적 사실에 대해서 비과학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자신의 과학적 성과 자체가 거짓이라는 사실을 반증(falsification)한다고 썼던 것이다. 당시 나는 세 차례에 걸친 황우석 박사 비판 칼럼으로 많은 비난과 공격을 받았다.

얼마 후, 논문조작이 밝혀졌는데도 한국사회에 조작은 조작이고, 줄기세포만 만들면 된다는 식의 애국주의적 열망이 휘몰아쳤다. 그뿐 아니다. 천주교의 힘이 작동했다느니, 새튼과 같은 경쟁 생물학자들에게 문제가 있다느니, 황 박사의 업적을 탈취해 가려는 미국의 작전이라느니, 민노당 등 좌파의 공격이라느니, 싸이언스지가 검증한 것이니 문제가 없다느니 하는 등의 감정적 판단과 음모론들이 속속 등장했다. 당시 나는 황우석 개인에 대한 동정(同情)은 무한해도 좋지만,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망치는 비이성적 사고는 중단되어야 하며 그것은 집단광기이므로 사회 전체가 위험해진다고 경고했다.

내가 더욱 더 낙담한 것은 줄기세포의 유무나 논문조작을 넘어서 한국인들의 성장발전에 대한 맹목적 열망이었다. 이 열망은 애국주의와 결합하면서 이성을 마비시키고 곧바로 광기(狂氣)로 내달았다. 그 이후로도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황우석 박사가 한국의 과학영웅이라는 믿음을 철회하지 않았다. 그래서 황우석 박사의 논문조작을 보도한 언론은 매국언론(賣國言論)으로 매도되었다. 반대로 대다수의 언론은 국민을 잘 살게 만들어줄 국가영웅을 사소한 잘못을 빌미로, 특정 언론이 망쳐 놓았다면서 비난과 공격을 늦추지 않았다. 논리와 과학의 자리에 신념과 열망을 배치한 형국이었다. 한마디로 구국의 영웅 신화를 꿈꾸는 한반도 전체는 광기의 도가니였다. 나아가 황우석 박사의 연구는 세계 최고이자 세계 최초이니, 황우석을 믿어야 한다는 황우석 교주(敎主) 현상까지 만연했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대목은 사태 초기에 대다수의 언론들이 본질을 보지 않고 무조건 황우석 박사를 옹호하려 했다는 사실이다.

참혹할 정도로 낭패스러웠지만 그것이 한국사회와 한국언론의 수준이었다. 과학은 감정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과학은 애국주의로 하는 것이 아니다. 과학은 열망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과학적 사실은 누가 공격한다고 해서 흔들리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과학을 감정으로 대했고 상당수의 언론은 애국주의로 논리를 덮어 버렸다. 이제라도 황우석 박사가 줄기세포를 만든다면 국가의 영웅이나 개선장군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많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거니와 이런 생각이 있는 한 한국에는 희망이 없다.

논문조작이 얼마나 큰 범죄인지를 알려고 하지 않고 애국주의로 이성을 냉동시킨 채 성장발전만을 열망한다면 한국은 분명한 후진국이며 위험한 사회이다. 무엇보다도 개인의 영웅적 행위를 역사의 주류로 보아서는 안 된다. 과학 또한 표면적으로 배치된 영웅이나 위인을 넘어서 내면의 민중적 힘, 즉 과학의 도도한 흐름을 보아야 한다. 황우석 박사의 개인적 곤경에는 인간적 동정을 보내야 하고, 황 교수를 관용과 사랑으로 대해야 하겠지만 한국사회가 다시는 광기에 휩싸이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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