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영어
영화와 영어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2.01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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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정 규 호 <청주시 문화산업진흥재단>

영국 킹스대학의 윌리엄 어윈 교수는 '매트릭스로 철학하기'라는 책을 통해 대중문화를 우리 시대의 공통언어로 규정하고 있다.

앤디와 래리 워쇼스키 형제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영화 '매트릭스'는 '그 이면에 존재하는 명확한 계획과 다양한 철학적 논의들의 의도적 통합'이라는 문제의식을 갖게 한다.

영화 '매트릭스'의 이야기 구조는 간단하다. 인간의 기억을 지배하는 가상현실세계에 대한 도전과 현실을 인식하는 자아 찾기라는 주제를 통해 대부분의 철학적 명제에 접근하는 새로운 시도를 한다.

최근 개봉된 영화 '클로버 필드'는 이런 영화의 새로운 시도에 비교적 충실하다. 괴물이 등장해 뉴욕을 강타하는 스토리 전개는 심형래가 감독한 영화 '디워'와 얼개가 다르지 않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시종일관 정제되지 않은 카메라의 시각으로 영화를 영화가 아닌 현실세계로 착각하게 하는 시도에 있다. '클로버 필드'는 분명 공상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공상은 멈추지 않는 카메라의 떨림과 정제되지 않은 시선처리로 인해 다큐멘터리를 보는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면서 실감의 정도를 심화시키고 있다. 감독이 추구하거나 연출한 흔적을 화면 깊숙이 감추어버린 의도는 의외로 심각하다.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UCC(User Created Contents)가 풀어내야 할 과제는 이를 통한 산업적 구조의 틀을 마련하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블로그와 기타 포탈에 의해 UCC에의 산업적 효과 부여를 시도하고는 있으나 영화 '클로버 필드'의 그것보다는 아직 치밀하지 못하다. 현실을 현실이 아닌 것으로 묘사하려는 숨겨진 의도와 공상을 현실로 착각하게 하는 연출기법의 성공 여부는 상징성의 부여에 있다.

발달한 CG(Computer Graphic)기술로 얼마든지 영화적 실체화가 가능했을 괴물의 모습을 오히려 흐릿하게 하는 일은 정상적인 극영화의 연출방식과는 다르다.

자유의 여신상 머리가 부서져 뉴욕거리에 나뒹굴고,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속절없이 무너지는 상징적 위협에서도 잊을 만하면 어김없이 되풀이되는 '일본'의 거론은 이 영화가 추구하는 메시지의 또 다른 반향이다. 이 영화에서의 들고 찍기 기법은 '라이언일병 구하기'의 긴박한 상황을 연상시키고, 대피의 통로로 선택하는 브룩클린 다리는 당연히 '브룩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라는 영화를 연상시키는 작용을 한다.

주목해야 할 것은 영화조차도 이처럼 수많은 상징성과 의미의 중첩 및 연상효과의 겨냥을 통해 그 효과를 극대화하겠다는 의도를 숨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추구하는 새로운 시도는 창조성을 근거로 하는 독자적 영역의 확보와 영화를 비롯한 문화콘텐츠 시장에서의 선점 효과를 통해 이미 현실과 이상의 세계를 넘나들고 있다는 점이다.

어찌됐든 그런 도전과 창조가 충만한 영화도 아무려면 백년대계로 상징되는 교육에 비길 수는 없다.

인수위라는 통과 의례 속에 영어만능주의가 제기되면서 혹시 영어를 제대로 못하는 사람은 사람 축에도 끼지 못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많다. 사교육비와 교사확보 및 질적 수준 등이 제기되는 우려의 팽배에도 불구하고 영어를 잘할 수 있으면 하는 것은 누구나의 바람인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일방통행이 수많은 이등과 삼등 또는 그보다 훨씬 못 미치는 등외로 만드는 건 아닌지도 따져볼 일이다.

미국영화를 보면서 한글자막을 숨 가쁘게 읽을 수밖에 없는 현실의 허약함과 영어중심의 사고를 피할 수 없는 미래의 사이에서 진정 '나랏말씀은 듕귁에 달아'를 주창했던 창조정신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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