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싶은 사람 뺨 때리나
울고 싶은 사람 뺨 때리나
  • 권혁두 기자
  • 승인 2008.01.25 22: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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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권 혁 두 부국장 <보은.옥천.영동>

지금은 복직됐지만 공무원 파업에 참여했다가 해직됐던 한 농업기술센터 직원과 가끔 만나던 적이 있었다. 그는 해직된지 수개월이 지났는데도 농민들의 전화를 받고 이것 저것 조언을 하고 있었다. 그가 공직에서 내몰린 사실을 알면서도 도움을 요청하는 농민들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농업인들이 해직자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할 정도로 고립무원의 상태에 있다며 빨리 복직해 떳떳하게 농업인들과 만나고 싶다는 심경을 피력했다. 한참 후 그의 복직소식을 듣고 누구보다 그와 교류했던 농업인들이 반가워하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기초단체마다 설치된 농업기술센터는 농촌진흥청의 최일선기관이다. 1962년 농사원과 농림부 지역사회국 및 훈련원을 통합해 발족한 농진청은 7개 연구소와 7개 시험장, 종자관리소, 한국농업전문학교 등을 거느리며 시험연구, 기술보급, 농업인 교육 등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농촌지도사'로 불리는 농업기술센터 직원들은 농진청의 연구를 토대로 농업인들과 호흡하며 영농현장을 뛰고 있다.

농업에 관해서는 비전은 물론 변변한 정책하나 내놓지 않아 농업인들의 아쉬움을 사던 대통령직인수위가 드디어 한건을 내놨다. 농촌진흥청을 정부출연 연구기관으로 전환한다는, 사실상 농진청을 폐지하겠다는 방침이 그것이다. 혹시나 하며 농촌대책을 기대해 온 농업인들로서는 뒷통수를 맞은 격이 됐다. 전국의 농업인단체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반대성명을 내는 등 농촌이 경악과 분노로 들끓고 있다.

무엇보다 의문이 드는 것은 인수위가 왜 하필이면 거의 유일한 농업관련 외청에 서둘러 이런 극약처방을 내렸는가 하는 점이다. 그렇지 않아도 농업인들은 한·칠레, 한·미 FTA 등으로 잔뜩 긴장하고 격앙돼 있는 상황이다. 설령 이같은 개편이 시급하다는 판단을 했더라도 토론과 공론의 절차없이 방침을 밀어붙인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전국 농민들의 원성속에서 취임식을 갖기로 작정을 한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연구와 시험사업의 '실효'를 높이기 위해서라는 명분도 선뜻 와 닿지 않는다. 농업정책의 혁명적 전환이 필요한 시기인 것은 맞지만 46년 동안 가동해온 농업연구기관을 일시에 정리하는 것을 해답으로 인정하기는 어렵다. 농진청의 어떤 점이 문제이고, 부족한지 납득할 만한 평가도 제시되지 않았다. 농산물의 비탄력성, 시장개방, 영세농 구조 등 농업이 처한 객관적 환경에서 실효를 구한다는 것은 난제중의 난제이다. 장기적이고 치밀한 계획이 필요한 문제인데도 덥석 농진청 전환방침을 정해놓고 '없애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 더 잘 되도록 하겠다. 믿어달라'며 무성의한 해명을 한 것을 보면 고민한 흔적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수익이 창출되는 분야만 집중 육성하겠다는 의도 아니냐는 지적도 귀담아 들어야 할 것 같다. 이명박 당선인의 한 측근은 출연기관으로 전환하면 생명공학, 유전공학 등과 연계한 수준높은 연구·개발이 가능해져 농업발전에 더 플러스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기초적인 먹을거리 생산으로 생계를 꾸리는 대다수 영세농들에게는 뜬구름 같은 얘기다. 대다수 농업인들이 빚더미에 몰리고 신용불량자로 전락해 영농자금조차 그림의 떡이 되는 것이 농촌의 현실이다. 농촌문제에 대한 해법도 이같은 현실을 토대로 나와야 한다.

농진청의 연구성과가 미흡하다고 판단했다면 우선 단호한 내부혁신부터 꾀하고, 그래도 변화가 보이지 않으면 그때 가서 정비방안을 찾는 것이 옳다. 물론 이 때도 취지와 향후 운영방안 등에서 농업인들의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충분한 설득논리를 갖추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 대불공단을 출입하는 화물차량에 베푼 총애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렇지 않아도 울고 싶은 농민들 뺨 때리는 일은 그만 벌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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