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종류의 자리
두 종류의 자리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1.24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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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이 수 한 <청주시 모충동천주교회 주임신부>

세상에는 두 종류의 자리가 있다. 한 자리는 서로 차지하려는 자리이고, 또 한 자리는 오르고 싶지 않은 자리이다.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다 보면 맨 앞자리가 비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학교 수업시간을 떠 올려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졸거나 딴 짓을 해도 보이지 않을 것 같은 뒷자리는 서로 차지하려 하지만 앞자리는 서로 앉지 않으려 한다.

세상 일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해 본다.

군림하는 높은 자리는 서로 차지하려 하지만, 자신의 희생을 전제로 남을 위해 봉사해야 하는 자리는 꺼려한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어느 자리가 더 가치있는 자리인지를 물으면 서슴없이 후자라 할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아무나 차지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자리를 마다하고 남을 짓눌러야 오를 수 있는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안달이다.

요즘 신문 특히 지역신문은 총선을 앞두고 공천을 받기 위한 예비 후보자들의 물밑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를 연일 보도하고 있다. 중앙당에서는 공천권을 쥐기 위한 힘겨루기가 계속되고 있고, 지방에서는 대통령 당선인과의 연줄을 내세우며 공천장을 받기 위한 신경전이 치열하기만 하다.

사실 인간의 높아지려는 욕망은 끊임이 없다. 결코 만족할 수 없는 것이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인간의 욕망이 아닌가 싶다. 우리 가운데 누가 한자리를 마다하겠는가 그 누가 으뜸이나 지배자가 되고 싶지 않겠는가 그 누가 다른 이들에게서 섬김 받기를 사양하겠는가 우리는 남을 내리누르고 때로는 희생시켜서라도 우리 자신을 그 위에다 올려 세우고자 한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전도돼야 한다.

성경 말씀대로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꼴찌가 되어 모든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

이 세상에서의 높은 자리 역시 섬기는 자가 차지해야 할 자리임을 우리는 명심해야만 한다.

높은 자리가 섬기는 사람에게 주어졌을 때 그 세상은 바르게 펼쳐지겠지만 만일 높은 자리가 섬김을 받으려는 사람에게 주어진다면 그는 자신의 권력으로 많은 사람들을 내리 누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이 세상이 비뚤어진 세상이라 생각한다면 그것은 높은 사람들이, 그리고 높아지려는 욕망을 간직한 우리 모든 사람들이 높은 자리를 섬김의 자리가 아닌 군림의 자리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높은 사람이 이야기하면 그것이 옳고 그름은 뒷전으로 한 채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세상, 그것은 분명 잘못된 세상일 것이다.

대통령 당선인의 한 마디에 뽑힌 대불공단의 전봇대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이런 우스갯소리를 떠올려 본다.

어느 날 장학관이 학교시찰을 나왔다. 한 학급에 들어와 교탁위에 놓여있는 지구의를 가리키며 "왜 이 지구의는 옆으로 기울어져 있지" 하고 물었다. 이 때 한 학생이 대답하기를 "제가 안 그랬는데요." 그러자 담임선생님 말씀이 "제가 올 때부터 그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어서 교감선생님이 머리를 긁적이며 "헤헤, 요즈음 국산이라는 게 다 그렇죠 뭐." 마지막으로 교장선생님 갑자기 자세를 바로잡으며 "예, 즉시 시정하겠습니다."라고 하더라는 이야기다.

높은 자리를 대하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은 아닌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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