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을 어루만지는 그림
가슴을 어루만지는 그림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1.23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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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목련
김 혜 식 <수필가>

자살은 의지의 부정과는 전혀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반대로 강력한 의지 긍정 현상이라고 '쇼펜하우어'는 그의 '자살론'을 통해 피력했다. 그는 '자살론'을 통해 자살자 삶의 부정의 본질은 괴로움이 아닌 삶의 즐거움을 혐오하는데 그 의의가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안타깝게도 OECD 국가 중 자살 증가율이 세계 제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복잡한 현대에서 추구하지 못한 삶의 즐거움을 죽음을 통하여 보상 받으려는 심리에서일까. 남녀노소 추호의 망설임 없이 자살을 선택하고 있다.

더구나 우리나라 노인 자살율은 교통사고의 1.5배에 해당한다고 한다. 이것으로 보아 노년의 삶의 질에 대하여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노화에 따른 심신의 변화는 노년의 삶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있다. 노년의 삶은 무미건조하고 마음이 피폐해져 세상으로부터의 단절과 소외감에 젖게 마련이다. 그것의 탈출구로서 자식에 대한 지극한 사랑, 그 사랑의 비상구가 막혔을 때 노인들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데 주저치 않는다.

나의 친정어머니도 예외는 아니다. 요즘엔 걸핏하면 '죽고 싶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것은 어머니의 가슴에 똬리를 튼 크나큰 슬픔 때문이리라.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위로해 드리는 뜻에서 그림 한 점을 어머니 방에 걸어두기로 했다. 그 그림은 프랑스 화가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작품 '피아노 치는 소녀들'이란 그림의 모작이었다. 비록 원작이 아닌 모작이다. 하지만 그림 속 두 소녀들의 모습은 감상자로 하여금 왠지 모를 마음의 편안함을 안겨주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림 속의 평화로움은 도대체 어디에 기인한 것일까 궁금했다. 하여 다시금 그림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뽀오얀 손을 피아노 건반에 살포시 올려놓고 악보를 보는 소녀, 그 곁에 기대선 다른 소녀의 머리를 꼭짓점으로 팔을 따라 선을 그으면 삼각형이 그려진다. 이 그림의 생명은 그것이 갖춘 삼각형 구도였다. 또한 소녀들의 머릿결, 커튼, 재질이 딱딱한 피아노 옆면의 곡선 등이 부드러움을 강조하고 있어 감상자의 마음에 편안함을 갖게 하고 있었다. 비록 그림에서 얻게 되는 작은 위안이다. 하지만 어머니께서 그것을 바라보는 순간만이라도 마음의 안정을 얻길 우린 간절히 바라고 있다.

지난해 초겨울 교통사고로 막내남동생이 갑자기 삶을 마감했다. 어머닌 그 충격을 못 이겨 자식들 앞에서 입버릇처럼 동생을 따라 죽고 싶다고 한다. 그런 어머니가 혹여 당신의 목숨을 끊는 불상사가 일어날까봐 자식들은 노심초사했다.

지난날 어머니는 막내 동생으로 인해 노년의 외로움과 소외감을 떨칠 수 있었다. 살기 바쁜 다른 형제들에 비해 그 앤 주말마다 홀로 계신 어머니를 찾아뵈었었다. 예쁜 옷도 사드리고, 화장품도 사드리고, 맛있는 음식도 사드렸다. 그 앤 어머니께서 노년에 갖게 되는 쓸쓸함을 가슴으로 달래준 효자였던 것이다.

이 그림 한 장이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비애를 다소나마 어루만져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허나 왠지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마치 평소 정 많던 남동생 모습의 대체물인 듯하여 나 또한 그 그림 앞에 한동안 서성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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