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 충청타임즈 기자
  • 승인 2008.01.18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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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정 규 호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한국 영화는 추억에 집착한다.'

우리 지역 대학에서 수학한 대표적 여성감독 임순례가 만든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보면서 슬그머니 떠오른 생각이다.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지난 아테네올림픽 여자 핸드볼 결승전의 감동을 비교적 성실하게 재현한다.

불가사의한() 한국 아줌마의 힘과 한국형 전략, 오기와 정신력으로 무장한 불굴의 투지가 힘차게 흐르면서 눈시울을 저절로 붉히게 하는 감정의 전이에 충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재의 일을 극화하면서 선택한 영화적 특성은 픽션과 논픽션 사이에서의 모호성으로 인해 감동의 여운은 그리 길지 못했다.

실패하거나 순탄하지 못한 결혼생활을 근거로 설정한 아줌마의 힘을 통해 극복해내는 최고의 순간까지의 상승곡선은 당연히 드라마적 수단으로 차용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과정을 통한 감정의 이입은 밤새워 TV를 지켜보던 당시의 감동과는 별개일 수밖에 없다.

하물며 엔딩 크래딧에서 버젓이 살아나는 실제 선수의 모습은 비인기종목의 설움과 여성의 불임, 그리고 우승을 했음에도 해체되는 팀의 한계를 통해 비극을 극적으로 승화시키려는 영화로서의 시도와는 그 가치가 무관하다.

지난해 한국영화는 위기 속에서도 비교적 선전을 했다.

헐리우드 영화를 밀어내고 흥행 1, 2, 3위를 고수했다는 점에서만은 그렇다.

논란이 많았던 '디워'의 관객수 1위는 차치하더라도 2위에 오른 '화려한 휴가'나 3위를 차지한 '그놈 목소리'는 모두 과거에 실재했던 사건을 극화함으로써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처럼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적 모호함과 영화적 상상력의 빈곤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한국영화가 즐겨하는 이런 시도는 과거로의 회귀 내지는 집착이라는 씁쓸함을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은하철도 999'는 1979년 8월에 개봉됐다.

린 타로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이 영화는 용감한 소년 철이(일본 이름 호시노 데쓰로)가 영원히 죽지 않는 기계의 몸을 얻기 위해 메텔과 함께 은하기차를 타고 안드로메다로 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주목할 것은 이 영화가 30년에 가까운 세월의 앞당김 속에서도 감정이 없는 기계인간으로의 영원성 확보보다는 슬픔과 기쁨을 느끼는 사람의 가치를 존중하는 풍부한 철학적 상상력이 있다는 점이다.

1978년 방영된 '미래소년 코난'은 항상 '서기 2008년 7월, 인류는 전멸이라는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는 시대적 배경설명으로 시작한다.

주인공의 선(善)과 대비되는 악의 세계 인더스트리아의 뉘앙스가 산업사회의 모순을 연상시키는 이야기 구조가 지금도 신선하다.

극도로 발달된 과학문명에 대한 경계와 함께 산업화를 거부하는 듯 한 원초적 옷차림의 '코난'과 등장인물의 모습들은 동심과 본능을 자극하는 창조적 상상력의 가치를 지닌다.

어쨌거나 우연의 일치로 믿고 싶은 '미래소년 코난'의 2008년은 시작됐고, 우리는 한반도 대운하를 둘러싼 개발과 환경에 대한 대립각에 맞닿아 있다.

다시 또 1960년대 이후 가장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시도가 국회로 던져졌고, 그 속내에는 작은 정부에서의 공룡부처가 용트림하고 있다.

혹시 이러한 집착이 '잃어버린 10년'의 정권에 대한 과거의 집착은 아닌지, 또 혹은 국민적 지지를 갈망하는 한풀이는 아닌지 궁금할 뿐이다.

역사는 그 정답을 알 것이고, 그 보이지 않는 속에서 우리는 차라리 실현 가능한 상상력과 창의성이 충만한 정부를 기다린다. 그래도 우리 모두에게 생애 최고의 순간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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