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도 등급이 있다
국회의원도 등급이 있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1.17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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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한 덕 현 <편집국장>

엊그제 대통합민주신당 충북 국회의원들이 손학규 대표와 만나 당 진로를 놓고 심각한 대화를 나눴다. 원래 안 되는 집안일수록 얘기에 토가 많이 달리고, 이유도 가지각색이다. 정치라고 해서 별수 없다. 대선에 이어 총선까지도 쫄딱 망하게 됐으니 이들의 고민이 오죽하겠는가.

이날 대화에서 도내 국회의원들이 신당의 이념적 좌표를 거론하며 '좌파적' 정체성에서 하루 빨리 벗어날 것을 손 대표에게 주문했다고 한다. 이는 참으로 많은 생각을 갖게 한다.

냉정하게 말하면 도내 신당 의원들은 원초적으로 정당의 이념을 논할 자격이 없다. 이들중 과연 몇 명이 지난 17대 총선 때 당의 이념이나 정강으로 무장하고 선거에 나섰는지 되레 묻고 싶다. 차라리 솔직하게 노무현 탄핵풍의 최대 수혜자였는데, 지금은 표가 안 나올 것같아 이회창 당으로 가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 훨씬 믿음직스럽다.

여기서 분명히 짚어야 할 것은 광복 이후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숱한 보수정당이 명멸했지만 대통합민주신당은 물론 어떠한 정당도 '좌파'는 아니었다. 국정감사에 나선 국회의원들이 피감기관과 어울려 룸싸롱에서 접대부들과 희희낙락하는 것이 좌파적이라면 몰라도 말이다.

통합민주신당 국회의원들이 탈당문제로 가슴앓이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처음부터 떨어질 요량으로 선거에 나서는 사람은 없다. 지금의 분위기라면 고전할 게 뻔한데 누가 당에 남고 싶어하겠는가. 안전한 당선을 원한다면 당연히 탈당해야 한다. 이들의 처신을 욕할 게 아니라 오히려 편의적 정치문화를 탓하는 게 옳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정치가 참 편의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정치적 고려장을 당한 JP가 느닷없이 집권당의 좌장으로 대접받지 않나, 대의 민주주의의 최고 '반칙왕'인 이회창씨가 졸지에 충청의 맹주로 등장했다. 황당한 공약으로 인테넷에서 뜨는가 싶던 허경영이라는 사람은 아예 차기 청와대 주인임을 자처하며 매관매직으로 대국민 사기극을 벌이다가 PD수첩한테 된서리를 맞았다.

요즘 매일 밤 잠을 설치고 있을 충북의 신당 국회의원들이 꼭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정치의 본질은 어차피 추구(追求)다. 뜻이 맞는 사람끼리 모여 결사(結社)하고, 그 의지를 전파해 사람을 끌어 들이고 정권도 잡는 것이다. 이런 과정은 쟁취하는 것이지 결코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니다. 정말 정치를 하고자 한다면 정당 지지도가 떨어졌을 때 나 혼자 살자고 버리고 떠날 게 아니라 이를 복구하거나 스스로의 득표력으로 승부를 걸어야 하는 것이다. 정치는 가장 정치적이어야 명분을 얻는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정치문제에 있어 충북이나 충청이 영·호남과 비교돼 항상 평가절하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결정적일 때 남의 밑으로 들어가고, 그러다보니 들러리 내지 일회용 반창고 역할만 하니까 총리는커녕 제대로 된 장관자리 하나 꿰차지 못한다.

어떻게든 당선돼야 지역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논리만큼 썰렁한 것도 없다. 국회의원들이 지역구 활동을 하면서 정부예산을 많이 따오면 그보다 더한 금상첨화도 없다. 그런데 여기에 맹점이 있다. 중앙 정치권에서 힘을 쓰지 못하면 푼돈 밖에 못 따온다. 동네 도로를 닦고 경로당을 지으라고 힘있는 자들이 인심쓰듯 떼어주는 쌈지돈에 만족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 지역 국회의원들이 정치력으로, 혹은 근성으로 똘똘 뭉쳐 사람들을 몰고 다니고 힘을 쓴다면 푼돈이 아니라 보따리 돈도 가져올 수 있다. 이번 만큼은 이런 대국적인 처신을 기대해 본다.

다행스럽게도(?) 최근엔 지역의 표심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당을 옮겨 다닌 사람한테는 대체로 싸늘하다는 것이다. 지금 당사자들은 아마 이점을 가장 우려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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