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보은과 한국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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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1.14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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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김 승 환 <충북작가회의 회장>

첫마디가 이랬다. '서울에 오가게 되면 보은의 산방은 어쩌지요' 도종환 시인의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 선임직후의 발화다. 그러니까 도종환 시인은 청주의 집과, 보은의 구구산방이라는 산속의 흙집과, 서울 아현동 등 세 곳의 거처를 가져야 하는 딱한 신세가 된 셈이다.

2007년 말 민족문학작가회의 총회에서 한국작가회의로 명칭을 변경한 후 그 체제에 따라서 사무총장을 선임했는데 초대 사무총장으로 충북의 도종환 시인이 선임되었던 것이다. 그 '유명한' 작가회의가 지난 1월11일 금요일, 서울 아현동에서 '한국작가회의(Writers' Association of Korea)' 현판식을 가졌다.

어떤 분들은 작가회의의 명칭변경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하실지 모르지만, 이 변화는 한국사회 전체의 방향전환과 관계있는 중차대한 상징적 사건이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를 비롯한 대다수의 신문들이 여러 번에 걸쳐서 사설을 쓰고 비중있는 기사로 다루었다는 사실로 입증된다. 심지어 문화일보는 명칭변경이 통과된 것으로 가정하고 특종을 확신하면서 2006년 12월, 1면 톱에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문화예술이 1면 톱의 지면을 장식하는 예가 많지 않은 것으로 볼 때 이런 현상은 극히 이례적인 것이었다. 그런데 2006년 12월의 문화일보 1면 톱 기사는 오보였다. 그해 작가회의 총회에서는 치열한 논쟁끝에 명칭변경을 유보하기로 결정했으니 말이다. 대신 그날 결정한 것은 명칭변경 소위원회를 결성하고 소위원회위원장으로 도종환 시인을 선임했다. 출판문화회관에서 열린 민족문학작가회의에서 '민족'자를 빼느냐 마느냐는 목숨을 걸 정도의 사안(事案)이라는 것이 상당수 작가들의 생각이었다. 혹자는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떠냐라는 식의 이방원타령을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것은 글에서 한 글자가 가지는 천지차이를 감지하지 못하는 무딘 감성의 소치다. 작가들은 단어 하나는 물론이고 글자 한자에도 수십 번을 생각하여 고치고 또 고친다. 하물며 대의명분이 실린 명칭이니 어떠했겠는가 2006년 회의에서 '민족'을 빼는 것은 영혼을 매매하는 것이며 정신을 놓는 행위이고, 따라서 차라리 민족문학작가회의를 탈퇴하겠다고 선언하는 경우도 있었다. 난감한 상황이었다.

2007년 1년 동안 도종환 시인은 명칭변경소위원회를 잘 이끌고 마침내 '민족'을 빼고 '한국작가회의'로 결론을 냈다. 그러니까 1970년대의 자유실천문인협회로 거슬러 올라가면 민족, 민중, 민주의 정신을 표상하는 것이 바로 민족이라는 두 글자다. 하지만 세계화의 시대에 배타적 민족주의와 민중독재로 오해받을 소지가 있기 때문에 명칭을 변경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대다수 작가들의 생각이었다. 한국에서는 민족주의가 저항과 발전의 동력(動力)이기 때문에 긍정적인 면이 많지만, 세계의 다른 국가에서는 파시즘의 전단계쯤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그래서 '민족'보다는 보편적인 '한국'으로 바꾸어서 시대적 흐름에 맞추고자 했던 것이다. 여기에는 보은출신 김사인 작가의 노력과 지지가 있었다. 김사인 시인으로 말하면 1980년대 '노동해방문학'을 주도하면서 시인 박노해를 연출한 투사이면서 평론가이자 시인이고 또 교수로 한국문학을 이끌어온 저명한 작가이기도 하다. 김사인 역시 보은 회인 사람이다.

그 뿐인가. 보은에는 송찬호라는 시인도 산다. 프랑스 르몽드지가 주목한 대표적인 한국시인인 송찬호이건만 정작 보은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많다. 보은에서 송찬호 시인이 어떤 존재인가를 모른다는 것은 무척 신기한 일이다. 임승빈 시인 또한 문학적 성과나 깊이가 범연치 않은 작가다. 지난 몇 년간 청주대학교 교수회장으로 재단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1인시위도 감행한 실천적인 시인으로 정평이 있다. 열혈 청년 김창규 작가도 있다. 강태재 소설가나 임병무 수필가 그리고 유정환 시인도 수구초심(首丘初心)을 보은에 두는 작가다. 조원진, 김백산, 송원자, 김철순, 임선빈 등 보은에서 문학활동을 하는 작가도 적지 않다. 이 모든 것을 거슬러 가면 근대한국문학의 거장 오장환 시인이 있다. 속리산의 서정과 동학(東學)의 저항정신이 문학예술에서 빛나는 보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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