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 바위, 보와 선거
가위, 바위, 보와 선거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1.10 08: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청논단
이 수 한 <행동하는복지연합 공동대표.신부>

어린시절 왕놀이를 했던 기억이 난다.

우선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순서를 정해 앉는다. 그 다음에는 맨 아래부터 윗사람에게 인사를 하고는 다시 가위, 바위, 보를 한다. 이긴 사람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방식으로 맨 윗자리, 즉 왕의 자리까지 가면 큰 절을 한 다음 왕의 자리를 두고 다시 가위, 바위, 보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이긴 사람은 왕의 자리를 유지하거나 새로운 왕이 되지만 진 사람은 맨 아래로 내려와 다시 왕의 자리를 꿈꾸며 가위, 바위, 보를 시작하게 된다.

인류는 오랫동안 이른바 왕정제도 하에서 살아왔다. 19 세기 말과 20세기 전반부에 왕정체제는 수많은 나라에서 급속도로 몰락해 갔다.

우리나라도 조선의 마지막 왕인 순종을 끝으로 왕정의 막이 내려졌다. 우리에게 있어서 왕이나 왕국은 이미 오래전에 낯선 개념이 돼 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왕정하의 사고방식마저 사라져 버렸다고는 생각되어지지 않는다.

한 사회나 국가에 지도자가 있으면 거기에는 항상 왕정의 사고방식이 자리잡고 있게 마련이다.

현재 대부분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직분을 보면 부차적인 몇가지 요소를 빼고는 옛날 임금과 별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독재국가에서는 더더욱 그렇겠지만 민주국가라 하더라도 대통령의 권한은 전제국가의 왕에 버금갈 만큼 막강하다 하겠다. 사실 현재의 미국 대통령은 인류 역사상 그 어떤 왕도 가질 수 없었던 막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 지구를 파괴시킬 수 있는 가히 신적인 권능을 가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분명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또 그렇다고 말은 하지만 대통령의 무소불위의 권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궁극적으로 인간이 왕정제도하의 사고방식을 거의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래서 인간은 누구나가 높아지려고 한다. 즉 남의 위에 군림하려고 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누구나가 왕이 되려 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말이 곧 법이고,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고, 바라는 대로 살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꿈일 것이다.

사람들은 높은 사람이 되기 위해 대통령선거에 나서기도 하고 국회의원선거에 나서기도 하며 지방자치가 된 다음에는 지방의 왕이라도 되기 위해 도지사나 시장, 군수선거에 나서기도 한다. 되기만 하면 많은 권력을 누릴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선거에 생사를 걸기도 하고, 부정을 저지르기도 한다. 그러나 권한이 크면 클수록 그 만큼 책임도 커진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마키아벨리즘이 판치는 것이 정치현실이라 하더라도 어린이들의 왕놀이 보다는 나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앞서 나가는 모습을 보면 벌써 새 정권이 들어 선 느낌이다.

누가 뭐라 해도 현 대통령의 임기는 남아있고, 그 임기 또한 보장되어야만 한다.

대통령직 인수위의 역할은 대통령 당선자가 정권을 제대로 넘겨받을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벌써 현재 시행되고 있는 정책의 변화나 행정부처의 존폐여부를 논하고 그 내용을 흘리는 것은 월권이요, 반칙이다.

이제 얼마 후면 총선도 다가온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비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그 가운데는 아직 임기가 남은 현역 자치단체의 장이나 의원들의 이름도 거론되고 있고, 정권창출에 나름대로 기여했다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도 오르내리고 있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어 진흙탕싸움이 되지는 않을지 걱정이다. 공석이 된 자리로 인해 또 다른 행정력의 낭비나 업무의 공백이 생겨나지 않을지도 걱정이다. 어린시절 왕놀이의 낭만어린 추억이 그립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