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위 있는 국가
품위 있는 국가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1.09 22: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청논단
한 덕 현 <편집국장>

이번엔 냉동창고다.

40여명이 한꺼번에 떼죽임을 당했다. 잘 사는 나라에서 돈 좀 벌어 새끼들 만큼은 호강시키겠다던 중국 동포가, 엄마의 노고를 덜겠다고 아침에 졸린 눈을 억지로 떼며 아르바이트에 나섰던 갸륵한 고등학생이 이유도 모른 채 화마에 희생됐다.

난데없는 참사에 사람들은 또 전율했다. 언론 역시 유가족의 울부짖음을 배경으로 예의 반성과 고해성사를 쏟아내느라 호들갑이다. 예상대로 똑같은 답이 나왔다. 안전불감증에 의한 후진국형 인재, 항상 이런식이다.

조만간 전국의 물류센터와 냉동창고가 일제점검을 받을 것이다. 당국의 서슬퍼런 경고가 또 한참을 횡행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형참사 일수록 냉정함이 더하다. 당사자들을 뺀 사람들에겐 곧 '남에 일'이 된다. 잠시 가졌던 동정도 너무 쉽게 일상에 묻혀버린다. 그리고 모든 것은 다시 정상으로 돌아간다.

지난 1993년 1월7일 오후 1시30분, 점심 후의 나른함을 뒤로한 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던 27명의 목숨을 앗아간 청주 우암상가 붕괴사건이 터진 지 꼭 15년이 되는 날, 그 악몽같은 기억은 인천 냉동창고로 오버랩됐다. 그래서 우리에겐 더욱 큰 무거움으로 다가왔다.

대형참사는 물론 사전 예고가 없다. 대신 예시는 늘 있다. 새해를 상징하는 징그러운 쥐가 영특하다는 덕담()을 듣는 이유는 그 하찮은 미물도 자연의 예시를 알아차린다는 사실 때문이다. 지진이나 화산, 해일의 조짐을 미리 알고 이동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자연을 정복한다는 사람만이 그런 예시를 모른다.

우리나라에서 대형참사에 대한 예시는 성수대교가 내려 앉고(94년) 삼풍백화점이 무너져 내릴 때(95년) 분명하게 나타났다. 이 때 개발지상주의에 매몰된 한국적 천민자본주의가 마지막으로 옐로우 카드를 받은 것이다. 당시 사회각계의 '기본'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전국에 진동했지만 그것 뿐이었다. 사람들은 그 경고를 무시했고, 곧바로 순리를 거역한데 대한 엄청난 보복이 가해졌다. 비행기가 떨어지고, 유람선이 불타고, 지하철이 폭발하더니 급기야 서해안에 기름 쓰나미가 덮쳤다.

성수대교가 무너져 내렸을 때 우리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를 들먹이며 반성했다. 1933년, 바다 위 66m에 놓인 금문교가 지금까지 무너지지 않고 아름다움을 뽐내며 세계적 명물로 대접받는 이유가 있다. 100여명 이상이 분야별로 매일 점검하고 끊임없는 보수작업을 편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도 엉청난 예산을 세워 다리 입구마다 입간판을 세우고 눈을 부라리며 과적차량을 단속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됐나.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는 독일 퀼른 사원이 언론에 올랐다. 600년전에 착공했는데 지금까지 공사가 진행되는 것을 부러워하며 우리도 그렇게 하자고 했다. 역시 결과는 아무 것도 없다. 여전히 속전속결의 주문만이 사회에 난무한다. 이제서야 겨우 조그만 개발의 기술을 배우고는 아예 자연을 정복해 버리겠다고 교만을 부리고 있다.

사고가 터질 때마다 사람들은 '기본'과 '원칙'을 강조하지만 우리사회는 여전히 쫒기고 조바심내고 이기를 부린다. 단순한 접촉사고에도 입원부터 하려하고, 버스가 천천히 간다고 기사를 폭행한다. 대형참사의 끈질긴 생명력은 바로 이런데서 나온다.

사람에게 인격이 있듯이 국가에도 품성과 품질이 있다. 이번 냉동창고 희생자들은 그 국가적 품위를 간절히 갈구하며 또 세상을 떠났다.

여기에 빗대어 이 말은 꼭 하고 싶다. 한반도 대운하, 금산 분리, 신문 방송 겸영, 대학 자율화, 비록 이것이 시대적 요구라고 해도 그렇게 서두를게 아니라 국가적 품위를 지켜달라는 것이다. 자칫하면 탈난다.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