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역사
시간의 역사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12.28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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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정 규 호 <청주시 문화산업진흥재단>

늘 그런 법입니다.

이맘 때 쯤이면 회한과 설렘으로 들뜬 감정을 주체할 길 없어 사람을 그리워하면서 여기저기를 서성거리는 것이 인지상정인가 봅니다.

다시 어김없이 한 해가 가고, 그런 '시간의 역사' 속에서 내 한 해도 저물고 말아, 속절없이 한 살 나이가 보태지는 흐름에 익숙할 뿐입니다.

다만 한 살이라도 더 성숙해지기를 갈구하던 젊은 날의 안간힘에서 이제는 제 나이를 알아보는 일에 소스라치는, 그리하여 나이를 잊고 싶은 중년의 서늘함으로 또 한 해가 갑니다.

누구에게든 참으로 많은 일을 겪었고, 참으로 많은 일들이 스쳐지나간 365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알지 못했고, 더 많은 일들을 알려고 하지 않았으며, 더 많은 것을 애써 외면하기에 급급했을 수도 있습니다.

스티븐 호킹이 저술한 '시간의 역사'는 역사상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책이나, 팔린 것에 비하면 제일 읽히지 않은 책으로 손꼽히는 오명을 받고 있습니다.

결국 '조물주가 할 일이 없는 우주'로 귀결되는 스티븐 호킹의 물리학적 해석은 '시간'에 대한 본질임이 분명합니다.

지구가 자전과 공전을 하는 태양계, 그리고 자신이 몸담고 있는 종교적 지침을 거스르는 가톨릭 신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과 빅뱅, 상대성 이론도 '시간'을 결정하는 과학적 근거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가 제 몸을 한 바퀴 돌림으로써 낮과 밤이 가려지고, 하루가 가는 현실을 인식하며 살아가기에는 너무 심란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물며 그런 스스로의 돎이 태양의 주위를 크게 회전하는 궤도와 맞물려 한 해가 가는 이치에 대한 실체적 접근을 감수하며 세상을 살아가기에는 너무 뻑뻑한 일 일 테지요.

문제는 감성입니다.

'아듀'와 '안녕', '짜이쩬'과 '사요나라'의 미묘한 차이에서 머뭇거림과 이어짐, 혹은 완전한 단절과 훗날의 기약이 서로 다른 느낌의 차이를 인식하는 것이, 빅뱅보다 우주보다 더 우리를 자극하는 법입니다.

이제 한 획을 다시 긋고 새로운 날들을 맞이할 준비의 시간입니다. 환희와 실망, 또 슬픔과 기쁨이 점철됐으며, 그리하여 힘겨웠던 그렇지 않았던 간에 어김없이 지구는 돌고 있고 우리의 한 해도 그런 속절없음에 맡겨집니다.

5년의 무성한 말과 갈등을 뛰어넘어 새로운 5년을 기대하는 희망이 세밑 대한민국에 있고, 또 정부가 세워진지 한 갑자가 되는 새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부디 단절의 잣대로 세상을 재단하면서 살아온 날들을 부정하는 오류는 없기를 바랍니다.

오히려 그 끈의 색깔이며 모양새와 재질까지도 인정하며, 그 끝에서 다시 시작으로 이어지는 굳세고 억센 매듭으로 새해를 맞을 일입니다.

물론 우주의 섭리에서 빚어지는 시간의 흐름과 같은 과학적 본질의 진리를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본질이라는 진리는 가슴 속에 담아 드러내지 않은 채 감성에 충실한 삶이 우리를 더욱 사람답게 하는 일이지 않을까요.

부디 새해에는 더욱 감성이 풍부해지고, 그리하여 사람됨에 어긋남이 없이 마음가는 대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과학적 가치에서 비롯되는 앎과 모름의 차이는 세상에 늘 있는 법입니다.

다만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 어느 덧 한 해가 가고 오는 '시간의 역사'에서 우리가 사람다움으로 살아가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함이 더욱 필요한 세밑입니다.

잘 지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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