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의 전력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의 전력
  • 이재경 기자
  • 승인 2007.12.27 22: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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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이 재 경 부장 <천안>

지난 24일자 중앙일보에 얼굴을 비친 작가 이문열씨가 이번 대선판을 '흑묘백묘(黑猫白猫)'란 네 글자로 함축했다.

한나라당의 승리-진보진영의 패배에 대해 그는 '우리 사회 저변에 있는 실용 또는 실리주의 세력이 진보, 보수의 이념관에 상관없이 이명박 당선자의 손을 들어줬다'고 분석했다. 이 당선자가 '검은 고양이든 흰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괜찮다'는 실용주의 세력의 지지를 얻었다는 얘기다. 흑묘백묘는 오늘 날 중국의 번영을 이끈 등소평이 1979년에 한 말로 실리를 위해서는 이념 따윈 버려도 좋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말이다.

공교롭게 이 말이 나온 지 이틀이 지나자마자 언론에 '실용'이란 단어가 굵직하게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이경숙 숙명여대총장이 25일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으로 임명되면서다.

그녀가 5공 초창기에 군부 독재정권에 참여했던 전력이 문제되자 상당수 언론들이 '실용인사'라고 추켜세우고 나선 것이다.

영향력이 큰 오프라인에서의 언론들은 꽤나 우호적이다. 보수 언론으로 대표되는 조·중·동은 26일자 기사에서 '코드보다 실력-성과 우선, 실용파 중용'(동아), '새정부 밑그림 여성이 그린다'(조선), '이명박식 리더십 밑그림 그릴 것'(중앙) 이란 제하로 1∼3면에 걸쳐 이 총장의 인수위원장 발탁 뉴스를 다뤘다.

일부 기사에서 이 총장의 전력이 인수위원장 임명에 걸림돌로 작용할 뻔했었다는 내용이 게재되긴 했으나, 그녀의 인수위원장 임명은 실용을 중시하는 대통령 당선자의 인사스타일로 미화시켜버리며 슬그머니 비껴 지나갔다. 대부분 그녀의 전력이 무엇 때문에 논란이 됐는지, 5공때 뭐를 했기에 그런 논란이 생겼는 지는 비추지도 않았다. 다른 언론들도 마찬가지였다.

진보주자 한겨레신문만이 관점을 달리했다. 한겨레는 26일 1면 머릿기사 '뉴스 분석'을 통해 '실용 또 실용, 신군부 협조 눈감았다'는 제목으로 일갈을 던졌다. 이 신문은 3면 박스기사를 통해 이 총장이 국보위 입법위원시절 무엇을 했는지를 비평없이 나열했다. 다음은 기사의 요약.

'신군부는 1980년 10월27일 국회와 정당을 해산하고 국회를 대신해 입법기능을 담당할 기구로 국가보위 입법회의를 만들었다. 군부인사와 경제·종교·법조·문화·학계 인사 등 대표 81명이 참여했으며, 이들은 이듬해 4월까지 입법의원으로 있으면서 신군부의 '거수기 국회' 노릇을 했다. 이 기간 중 국가보위입법회의는 215건의 안건을 접수해 모두 가결시켰으며, 정치활동규제법, 언론기본법, 국가보안법, 노동법, 집시법개정안 등 악법시비가 일었던 법안들을 통과시켰다. 이후 이 총장은 민정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등원했다.'

인터넷매체 데일리서프라이즈는 칼럼을 통해 '21세기에 1980년 군사반란 부역자가 정권인수위원장을 맡은 것을 후세가 어떻게 이해하겠느냐'며 힐난했다.

대부분의 언론들이 외면한 이 총장의 인수위원장직 임명에 대한 비판적 사설쓰기를 세계일보가 용기있게 결행()했다.

세계일보는 26일 '아쉬움 남긴 인수위원장 인사'란 제하의 사설에서 (이 총장이 몸 담았던) 국보위 입법회의와 신군부를 정당화시켜준 반민주적 기구로 단정짓고 '이 당선자가 실용이 시대의 흐름이라고 여길지 모르겠으나 이를 과거의 도덕적, 정치적 흠결은 무시해도 된다는 뜻으로 확대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꼬집었다.

25일 인수위원장직 임명직 후 기자들이 5공때 국보위 입법회의 활동전력에 대해 묻자 이 총장에게서 이런 답이 나왔다. "이미 역사적으로 평가가 난 것 같다. 27년전 일인데."

그녀는 자신의 신군부 가담전력에 대해 단 한마디의 사과나 반성이 없이 시종 당당하게 앞으로의 할 일에 대해서만 말을 잇고 인터뷰를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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