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권교체의 의미
이명박 정권교체의 의미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12.26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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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한 덕 현 <편집국장>

한나라당 사람들이 요즘 신주 모시듯하는 말이 하나 있다. '겸손'이다. 10년만에 되찾은 정권인데도 이를 음미하기도 전에 앞으로 닥칠지도 모르는 위기부터 예단하며 틈만 나면 "겸손하자"고 의기투합한다. 겉모양새만 보면 이보다 더 바람직한 정치적인 금도도 없다.

단언하건대 이런 분위기는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권력이나 정권이 이처럼 겸손했다면 지구는 이미 지상낙원이 됐다. 안타깝게도 권력은 겸손이 끼어들만한 공유의 개념이 못 된다. 독식과 추구의 대상이 될지언정 분배의 관념과는 원초적으로 거리가 멀다.

때문에 한나라당이 정작 국민의 매서운 민심을 의식한다면 이런 가식의 선의(善意)보다는 원칙과 기본의 정치신념을 먼저 어필해야 할 것이다. 만약 이것이 전제되지 않을 경우 지금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한방에 갈 수도 있다'는 잠재적 위기론은 곧바로 현실화될지도 모른다.

이번 정권교체의 성격규정도 우려스러울 정도로 너무 왜곡되고 있다. 보수가 진보를 눌렀다는 식의 이념대결이나 경제만이 지나치게 강조됨으로써 오히려 당선자를 옥죄고 있다. 일부 보수언론들은 아예 지난 10년을 '역사의 사생아' 쯤으로 단정해 버리며 보수의 정권탈환에 용비어천가를 부르느라 정신없다. 이번 대선은 결코 이념대결이 아닐 뿐더러, 그렇다고 꼭 경제에만 집착해 표심이 나타난 것도 아니다.

그 엄청난 자질론 시비에도 불구, 끄떡없이 MB가 당선된 것은 다름아닌 정치의 뿌리깊은 속성(?)에 근거한다. 어차피 정치는 우상을 갈구하고 그 동력을 제공하는 것은 바로 대중들의 변화에 대한 기대감이다. 공교롭게도 이번 대선에선 정치의 이런 속성이 그대로 나타났고, 때문에 가장 정치적이었다는 평가도 가능하다.

국민들은 우상을 원했고, 막판에는 그 우상을 국민 스스로가 만드는데 집착했다. 끝까지 이명박의 대세론이 꺾이지 않은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그리고 그 저변엔 '뭔가 바뀌어야 한다'는 변화에 대한 욕구가 철저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대중의 변화욕구는 가히 무조건적이다. 일단 상황이 벌어지면 논리적인 접근보다는 감성이 앞선다. 이는 혁명의 논리와도 일맥상통한다. 대중의 즐거움과 희열은 바로 변화에 대한 전율이 있어야 가장 극적이고 폭발적이다. 87년 6월 항쟁 때, 집권세력의 상식을 뛰어 넘어 거리로 뛰쳐 나와 환호한 것은 넥타이 부대만이 아니었다. 무수한 서민, 노동자, 구멍가게 주인, 심지어 부랑인까지 가세해 돌멩이를 던지며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낀 것이다. 이들이 가졌던 변화의 욕구와 이번 대선에서 나타난 민심은 엄밀히 말해 같다.

이명박의 정권교체는 어쩔 수 없이 '경제'를 가장 큰 화두로 삼았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MB의 경제 마인드다. 사실에 입각한다면 그는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서 독재 개발경제에 익숙했던 인물이다. 통치권력의 정치논리에 휘둘린 경제로 현대(現代)를 일군 장본인이다.

이러한 독재개발 경제는 결국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을 거쳐 끝내 97년 11월23일 김포공항에 내린 IMF 집행관 3명의 아주 건방진 모습으로 막을 내렸다. 그 때 가슴을 훤히 드러낸 이들의 노타이 차림의 안하무인에 '거덜난 국가'의 굴욕을 곱씹어야 했던 국민들은 지금 MB에게 간절한 마음으로 발상전환의 경제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이명박 당선자의 가장 큰 장점은 그가 무수한 역경과 과정을 거쳐 대권을 잡았다는 것이다. '정권'이라는 단어에 따르는 탈환이니 쟁취니 하는 말에 귀착해도 어차피 정권은 투쟁의 산물이고, 이렇게 얻은 정권이야말로 생명력이 강하다. 그 생명력을 바탕으로 이미 쌓일대로 쌓여 있을 그의 내공이 그야말로 '전율의 변화'를 가져 오는 정치력을 발휘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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