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새
겨울새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12.25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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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발언대
서 원 일 <단양 상진초 교사>

겨울에 알을 낳는 새를 본적이 있는가

대성산 자락에 하얀 모시처럼 얇은 눈이 쌓이거나 초겨울 플라타너스 가지에 몇 장의 이파리가 하늘거리면, 나는 교실에 홀로 앉아 산고에 신음한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스물여덟의 따스한 알을 낳았다.

"사랑해요, 선생님"이라는 인사말을 배우면서 처음 너희들을 만났지.

첫 만남의 어색함과 새로운 친구들과의 친근함을 위해 매일 교실 가득 동요의 선율을 뿌려 놓고, 3월을 보내기 아쉬워 첫 사랑반 컵 차지 남자대 여자 축구시합을 하며 구슬땀을 흘렸었구나. 4월에 접어들며 10년 뒤 만남의 징표로 자두나무 네 그루를 교문 옆에 심어두었고, 경주의 밤하늘에 그려 놓은 우리들의 함성소리에 수학여행은 앨범처럼 마음속에 남았다.

5월 스승의 날에는 선생님이 준 500원에 자신의 마음을 담아오느라 고생을 했을 것이고, 요리실습을 하면서 어엿한 작품을 만들어 내어 놓던 그 손이 아름다웠다.

6월에는 커다란 운동장을 도화지 삼아 주전자로 그림을 그려 놓았지. "아! 그렇지" 너희들의 생활태도를 고쳐준다고 단체벌도 받았구나. 7월에는 6학년 전체 아이들을 초대하여 멋지게 선보인 '사랑반 연극제'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9월에는 운동회를 기억하겠지 10월에는 친구들의 손을 잡고 올랐던 소백산 정상의 운해가 아직도 눈에 선하고, 조용한 음악과 촛불의 아름다움을 배경으로 들려주었던 '사랑반 동시 낭송회'가 있었지. 음∼ 11월에는 사랑컵 야구시합이 있었구나. 여자친구들도 야구배트에 맞는 공 소리가 좋다며 계속하자고 선생님을 협박() 했지. 어느 날 우연히 가르쳐 주었던 '사거리'란 놀이에 너희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내가 더 기뻤다.

그리고 오늘 12월. 다음 주에는 너희들과 김장을 하면서 부모님의 소중함을 느껴볼 거야. 내년 2월에는 졸업식을 앞두고 세수식(洗手式)을 하면서 너희들의 손을 깨끗하게 씻어주며 이별의 아쉬움을 달래보련다.

아! 그리운 2007년이 창문을 흔드는 겨울바람처럼 선생님의 마음을 울컥하게 만들고 있다. 쉬는 시간마다 선생님의 흰머리를 뽑아준다고 대들던 너희들의 손길이 그리울 것이고, 매일 집에 갈 때마다 들려주던 "선생님, 사랑해요"란 소리가 귓가를 맴돌거야.

교실 바닥에 앉아 공기를 하는 모습이나 시험 볼 때 허공을 쳐다보는 그 눈동자까지도 끊을 수 없는 인연으로 다가와 작은 미소를 뿌린다.

이렇게 살가운 이야기를 엮어가는 아이들이야말로 우리들 마음속에 기억되고 있는 동심이 아닐까 한 가지 걱정스러운 점은 너희들이 살아갈 세상은 꿈같은 동화 속 이야기는 없을지도 모른다는 거야. 때론 지쳐서 쓰러질 때도 있을 것이고, 삶이 고달파 눈이 부울 정도로 울고 싶기도 할 거야. 게다가 수없는 방황이 벽처럼 너희들을 막아설지도 모른다. 하지만 걱정 말아라. 우리들에겐 사랑반만의 추억이 있으니까. 우리들이 엮어 놓은 추억들은 앞으로 우리들이 이 세상에 우뚝 설 수 있도록 튼튼한 다리가 되어 줄 거야.

책상마다 놓여있는 새하얀 알들을 바라보면서 이 아이들이 혼자서 세상과 맞설 때 당당할 수 있는 자신감과 혼자가 아닌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인간다운 모습으로 그 껍질을 깨고 나오기를 기대하면서 조용히 빈 교실에 남아 스물여덟의 알들을 품어 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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