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에 부르는 사부곡(思父曲)
12월에 부르는 사부곡(思父曲)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12.20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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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칼럼
김 영 석 <북부종합사회복지관장>

아버지!

올 한해도 벌써 다 저물어 갑니다.

남들은 송년회다 뭐다 해서 들떠 있을 시기에, 우리 형제들은 매일 매일을 초조함속에서 보내고 있습니다.

지난 11월 22일 갑자기 아버지께서 쓰러지셨습니다. 아마도 지금까지 한 손으로 가족의 생계를 위해 묵묵히 땅을 지키신 아버지의 짐이 너무 버거우셨나 봅니다.

아버지께서 병석에 계신지 벌써 한 달이 되어 갑니다. 아직도 의식이 정상적이지 못 하시고, 우리에게는 너무 엄격하신 분이셨던 아버지의 현재 모습은 너무나 왜소하기만 합니다. 어젠 마치 아버지의 모습이 어린아이로 변해버린 것 같아 집으로 오는 내내 속으로 울었습니다. 곁에 안식구와 아이들이 있었기에 겉으로는 담담한 척 했지만,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저는 울음을 삼키고 있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장남에 대한 소원은 공무원이 되거나 교사가 되는 것이었죠. 그런데 장교로 제대한 후 사회복지 일을 하겠다고 장애인재활협회에 취업을 했을 때, 아버지는 아무런 말씀을 하지 않으셨고, 21년이 되는 지금까지 누군가 장남의 직업을 물어보시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씀만 하셨습니다. 아마도 아버지께서는 사회복지사의 길이 탐탁하지 않으셨나 봅니다.

이제는 장남의 직업에 대해 자랑스럽게 말씀하실 때도 되었는데 말입니다. 언제쯤이면 사회복지분야에 근무하고 있는 장남의 직업을 자랑스럽게 말씀하실까요

아버지!

어제는 새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있었습니다. 중환자실에 계실 때도 아버지께서는 대통령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버지처럼 평생 장애를 가지고 살아오신 분들이 소외되지 않는 나라, 병원에 계신 분들이 병을 고치는 것보다 먼저 돈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 우리 장남은 사회복지사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있는 나라, 어르신이 되었다고 해서 한편으로 밀려나지 않아도 되는 나라를 원하시고 계신 것은 아닌지요.

아버지!

요즘 사회복지의 길을 선택한 것을 후회도 해 봅니다. 독거노인에게 김치를 나눠 준다, 생활필수품을 나눠 준다, 쌀을 나눠 준다, 직장에서는 바삐 돌아가면서 정작 저는 아버지 곁을 지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프신 아버지를 모시고 이 병원 저 병원 돌아다니면서, 아버지께서 장남의 직업을 함구하고 계신 것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사회복지사가 아니고 돈을 벌었거나 권력을 갖고 있었다면, 그런 일들이 벌어지지 않아도 되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21년 만에 처음으로 제가 걸어온 길을 후회했습니다. 이제는 늦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입니다.

아버지!

저희 형제들은 소망합니다. 하루빨리 병석에서 일어나셔서 예전의 엄격하신 아버지 모습을 보여주세요. 나이 50이 다 되어가도록 아버지에게 마음 터놓고 대화한 적 없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그런 기회를 주셔야죠. 저도 아버지께 여쭈어보고 싶은 것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우리 형제들이 아버지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야죠.

이젠 사회복지사인 장남의 직업이 돈 많이 버는 직업보다 중요하게 생각될 날이 올 겁니다. 그때 아버지께서 장남의 손을 잡고 자랑스럽다는 말씀해 주셔야죠.

조금 있으면 새해가 밝아 옵니다. 비록 년 말에는 우리 형제 우울했지만 새로운 해가 밝아 올 때는 건강하신 아버지를 모시고 가족 모두 화목하고 건강하고 행복하자는 약속을 하고 싶습니다. 제 나이 50이 다 되도록 못한 말씀 이제야 드립니다. 아버지,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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