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한 객관식 문제
답답한 객관식 문제
  • 권혁두 기자
  • 승인 2007.12.02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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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올 대통령 선거를 목전에 두고 있는 유권자들은 역대 그 어느 선거 때보다 답답하다는 반응들이다. 한 후보는 올 대선이 '삼지선다형 객관식 문제'라고 했다. 여론조사 3위인 자신을 1·2위 후보와 버무려 슬그머니 당선 가능성을 암시하는 '선두권'으로 엮고, 유권자들에게 선택의 범주를 강박하는 정략적 발언이지만 선거가 객관식이라는 그의 얘기는 맞다. 문제는 올 객관식 문제에 정답이 없다고 생각하는 유권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오답이라도 적어 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백지를 내야 하는 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는 푸념이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최근 매체에 선보이기 시작한 유력 후보들의 광고물은 답답증의 수위를 높인다. 한 후보의 신문광고에는 얼굴에 연탄가루를 찍어바르는 다른 당 후보의 사진이 들어가 있다. 처음 광고를 접한 사람들은 사진 속 후보가 탄광을 방문했거나, 연탄 나눠주기 같은 봉사활동에 참여한 사진을 내세워 서민적 이미지를 알리려는 광고로 착각한다. 그런데 광고주를 보면 그와 혈전을 벌이는 상대 정당이다. 

동료의원들이 얼굴에 연탄가루를 발라주는 사진을 설명하며 그를 위장의 대가로 꼬집는 카피로 시선을 옮기고서야 광고의 의도를 깨닫게 된다. 상대의 약점을 뭉뚱그려 후려친 발상이 가상하기는 하지만, 적장의 낙마에 사활을 거는 이 당의 군색한 전략이 그대로 노정돼 있다. 집권정당의 대표를 지내며 국정의 중심에서 호령했던 후보가 자신을 알리려는 광고의 중심에 상대 후보를 놓는 처량한 '네거티브'는 실소를 자아낸다.

확인됐거나 사실관계를 확인 중인 의혹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사는 한 후보는 욕쟁이 할머니 집에서 국밥을 먹으며 "아직도 배가 고프다"고 말한다. 재·정·관계의 요로를 두루거친 데다 수백억 재산가이기도 한 그가 왜 아직도 배가 고픈지 진짜 배고픈 서민들은 궁금하기 짝이 없다. 국밥 한 그릇을 비운 그는 대한민국 경제를 키우겠다고 외친다. 먹어도 먹어도 끝이 없는 그의 걸식증이 국가경제 살리기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그렇지 않아도 그의 식탐을 걱정하는 유권자들의 머리로는 파악이 되지 않는다. 그가 대통령이 되기 전에 배불리 먹여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도 떠돈다.

또 한 후보는 TV광고에서 "출마로 많은 것을 잃었지만, 그 대신 대리운전기사·소녀가장 등 서민의 마음을 알았다"고 말한다. 대권 3수에 들어서서야, 또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잃고 나서야 서민의 처지를 알게 됐다는 고백을 진짜 반성으로 받아 들여야 할지, 그가 이제야 마음을 통했다는 서민들은 헷갈린다. '차떼기'와 정계은퇴 번복 등의 꼬리표를 달고 있는 그가 내세우는 슬로건은 법과 원칙이다. 노욕으로 민주정치와 정당정치의 근간을 훼손했다는 정계 안팎의 비판에 한 전직 대통령으로부터는 "먼저 인간이 돼라"는 충고까지 들은 이 양반이 생각하는 법과 원칙은 무엇인지 많은 유권자들은 궁금하다.

유권자들이 호소하는 답답증의 유형은 대체로 이렇다. 당선 가능성을 따지다보니 후보들의 결정적 흠결이 거슬리고, 확률을 무시하고 후보를 선택하려니 사표가 될 공산이 너무 높다. 다시 가능성 쪽으로 가서 궁리를 했지만, 후보들의 기본 품성이 절망감으로 다가온다. 제기된 치부들을 수긍하고 진지하게 자기반성이라도 해 준다면 '차선'이나마 고민해 볼 요량이지만, 오리발 아니면 훤히 들여다 보이는 변명 일색이니 유린당하고 농락당하는 느낌이다.

큰 변동없이 유지되는 여론조사 지지율은 진퇴양난의 고민에 열패감까지 보탠다. 나를 제외한 사람들의 생각은 다른 모양인데, 내가 시류나 정치적 감각에서 처지는 것 아니냐는 불쾌한 자문에까지 시달리게 된다. 유권자들이 처한 상황이 답답하다는 것은 그만큼 유권자 역할이 절실한 상황이라는 반증이다. 냉소와 허무를 떨치고 냉철한 권리행사를 생각해야 할 때이다. 스스로를 서민이라고 생각하는 유권자들은 특히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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